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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보다 가볍고 빠른 "리눅스"를 USB에 설치하기 (Linux To GO USB 설치)

우주발 이주 대비, 우분투 USB메모리에 설치하고 운영하기
윈도우보다 가볍고 빠른 "리눅스"를 USB에 담다! (Linux To GO USB 제작) https://www.youtube.com/watch?v=DrsbBaEKi-8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라이프

수원화성문화제 그 시작을 고하는 ‘작헌의’

우주 이주후에도 수원의 모든 양식은 다시금 복원될 수 있으며 계승될 수 있다.
지난 5일 화령전에서는 수원화성문화제 그 시작을 알리는 화령전 '작헌의(爵獻儀)' 행사가 거행됐다.이번 행사엔 염태영 수원시장을 비롯해 노영관 수원시의장, 수원문화재단 유완식 대표 이사 외 많은 시민이 참석했다.화성행궁 옆에 위치한 화령전은 사적 제115호로도 지정됐으며 1801년(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이다.영전이라고 하면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화령전엔 정조대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봉안해 놓았기 때문이다.화령전의 이름은 화성에서 '화'를 가져왔고, 국풍주남 갈담의 마지막 구절인 '부모에게 문안하리라'에서 '령'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특히 화령전의 묘전각의 편액은 원래 순조가 직접 썼었다고 기록돼 있다. '작헌의' 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염태영 수원시장, 노영관 수원시의장, 수원문화재단 유완식 대표 이사 또한, 화령전에서 열리는 의식행사인 '작헌의'는 술따를 '작(酌)' 바칠 '헌(獻)' 으로 임금이 손수 잔을 올려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왕이나 왕비의 조상이나 문묘의 신위에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던 제도로서 본래는 계급이 낮은 하관이 상관에게 하거나 제자가 스승에게 아뢰거나 물어보고자 하는 말이 있을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술병을 들고 찾아가는 예라고 생각한 데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그 후 그러한 의식이 발전하면서 작헌(酌獻)은 산 사람 사이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는데 있어서도 소원을 빌면서 술잔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훗날 제례형식으로 변했다고 한다. '작헌의'는 전통의식 행사다.수원화성 또는 정조대왕과 관련된 전통의식은 주로 정조의 영전인 '화령전'에서 하거나 팔달산 위에 위치한 화성신을 모시고 있는 '성신사'에서 행사가 여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 화령전을 방문하면 건축물에 대한 모양이나 구조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날 작헌의 의식을 보고나선 화령전에 대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숙연한 의식행사에 전통복장을 한 제례악과 제례무 단원들의 하나하나 움직임과 악단의 소리에 더욱 숙연한 마음까지 들게 했다. 이날 있었던 작헌의 절차로는 제관과 제집사를 임명하는 의식인 분정, 작헌의 시작을 헌관에게 고하는 의식인 청행사, 울찾주와 폐백을 올리는 의식인 신관례, 헌관이 잔을 올리고 푹문을 읽는 의식인 헌례, 잔을 받아 복을 받는 의식인 음복례, 폐백과 축문을 태우는 의식인 망요례, 작헌례를 마치는 것으로 헌관에게 고하는 의식인 필례 순으로 의식이 진행됐다.이날 '작헌의'의 시작으로 수원화성문화제 공식행사가 진행됐으며 오후 3시부터는 시민환영퍼레이드와 6시 부터는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가 야간에 진행됐다. 이어 화성행궁 광장에서는 수원화성문화제 개막공연이 펼쳐졌다. 수원화성문화제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열리게 되며 폐막식은 7일 일요일 화성행궁광장에서 저녁8시부터 진행된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라이프

수원화성문화제 현장에서 느낀 축제의 향연

시민환영퍼레이드, 능행차연시, 융건릉 제향 등 축제의 이모저모
제49회를 맞는 수원화성문화제 그 화려한 개막 지난 5일 오후 3시 30분부터는 정조대왕의 영전이 있는 화령전에서 축제의 시작을 고하는 작헌의 의식이 거행되고 곧이어 4시 30분 부터는 시민환영퍼레이드와 능행차연시로 행사를 진행해 올해 49회를 맞는 수원화성문화제 그 화려한 개막을 알렸다.시민환영퍼레이드와 능행차연시는 이날 종합운동장을 시작으로 장안문을 거쳐 행궁삼거리를 지나 연무대까지 이르는데, 이 행사를 보려는 사람들이 3시부터 수만의 인파가 몰리면서 하루종일 복새통을 이뤘다.축제의 분위기가 물씬 넘쳐나는 그 축제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화령전에서의 작헌의 의식이 끝나갈 무렵인 오후 3시 50분, 축제 기간 중 가장 인기 있고 많은 관광객이 몰리며 또, 꼭 보고 싶어 하는 시민퍼레이드와 능행차연시를 보기 위해 부랴부랴 장안문으로 향했다.행궁에서 장안문으로 향하면서 거리엔 수많은 인파가 축제의 행렬을 보기 위해 몰려들고 있었다. 각 구간에서는 각 동 주민센터에서 나와 의자와 음료수등 먹을거리를 준비하는데 분주했다. 수천명이 참가한 최대의 행차 "당연히 이건 봐야지"수원에서 몇 년 전부터 시민퍼레이드와 능행차연시는 꼭 봐야하는 축제의 장면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 만큼 시민퍼레이드와 능행차연시는 수원화성문화제에서도 그 비중이 꽤 크다.또한 지인은 "축제를 한다면 능행차연시는 언제 하냐며" 가장 크게 궁금해 하기도 한다.4시 가까이 되자 곧 장안문에 도착했다. 무엇보다 장안문을 선택한 것은 장안문이 옛 화성의 정문으로 200년 전으로 돌아가 성문 앞에서 정조대왕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장안문 성밖엔 작은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양쪽엔 주한외국인사절단을 비롯해 많은 내빈이 참석했고, 이날 행사에는 염태영 수원시장을 비롯해 채인석 화성시장, 신장용 국회의원, 안혜영 도의원 외 많은 도.시의원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곧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행사가 진행됐다. 장안문 앞에선 행렬이 도착하기 전 작은 공연이 펼쳐졌는데 어린아이들이 나와 음악소리에 맞춰 신명나는 댄스 춤을 선보였다. 무엇보다 요즘 인기가 있는 강남스타일의 노래에 맞춰 말춤을 추는 아이들의 모습에 이곳에 모인 시민들은 즐거워했다.이번 시민환영퍼레이드에서는 버드내 풍물팀, 밤밭어린이방송 및 성인 댄스팀, 신풍초등학교 취타대, 태권도시범,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국제청소년 춤 공연과 수원이 연고지인 삼성전자를 비롯 SK의 공연도 이어졌으며 이날 퍼레이드에는 2,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태권도 시범 무대는 보는 이들의 탄성을 지어낼 만큼 수준 높은 태권도 시범을 선보였다. 시민환영 퍼레이드가 지나가고 해질녁 무렵, 정조대왕 능행차 연시가 바로 진행됐다. 기존의 한 낮에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행사에선 야간에 행차가 이뤄진 것이다.정조대왕을 맞이하는 자리엔 지역의 많은 인사들도 참여했다. 염태영 수원시장, 채인석 화성시장, 지역의 국회의원과 도.시의원도 의복을 갖추고 정조대왕을 맞이했다.이날 능행차 행렬은 인원 1,200여명과 말 79필이 행차에 동원됐으며 수많은 인파로 인해 발디딜 틈 없이 모여든 시민들과 함께 정조대왕을 맞이했다. 이날 행차는 화성행궁으로 이어졌으며 개막 경축 타종식에는 김문수 도지사가 참석해 수원시민들의 가장 큰 축제인 수원화성문화제의 성공을 기원했으며 행궁에서는 개막축하공연이 펼쳐졌다. 수원화성문화제, 융건릉 제향 다녀오다지난 6일 화성시에 위치한 융·건릉에서는, 수원화성문화제 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융릉제향을 시작으로 건릉제향도 함께 진행됐다.이날 행사에는 화성시에서 주관하는 효 문화제도 있어 외국인사절단을 비롯해 많은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이날 제향식 행사엔 염태영 수원시장과, 채인석 화성시장, 노영관 수원시의회의장 등이 직접 행사에 참여해 수원화성문화제의 그 의미를 더했다.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위치한 융간릉은 사적 20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조(사도세자)와 그의 비 헌경왕후(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융릉(隆陵)과 그의 아들 정조와 효의왕후를 합장한 건릉(健陵)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이날 제향의식은 융릉부터 거행됐다. 11시부터 진행된 제향에는 외국인 사절단들의 진지한 눈빛으로 제향식을 바라봤고 무엇보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려는 표정들이 역력했으며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줄 모르고 있었다.융릉에서는 200여년전 당시 정조대왕이 융릉을 찾은 모습을 재현이라는 하듯 고증에 의한 조선시대의 의복을 갖추고 엄숙하게 행사를 진행했으며 융릉 제향식에 이어 건릉에서도 제향식을 거행했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개인기록물

기대되는 경기 삼남길 수원·화성·오산 구간 개통

첫 개통되는 경기 삼남길 33.4km의 수원·오산·화성구간
옛 조선시대 한양과 삼남지방인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 지역을 연결했던 옛길인 '삼남길'이 경기도의 새로운 역사와 문화,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문화탐방 길로 다시 태어날 전망이다.이번 개통되는 삼남길 구간은 옛 하나의 고장이었던 수원과 화성, 오산의 지역의 역사적인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뿐만 아니라, 경기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 관광지를 이어주면서 그 시너지 효과는 굉장히 클 것을 보인다. 미리 걸어본 수원과 오산구간의 삼남길과 또한 화성시의 주요한 구간은 하나의 문화적 공통점이 있다.지역정서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사성도 같이 한다. 수원화성과 삼남길 수원구간에 있는 지지대비, 축만제(서호)가 그러하고, 융건릉과 용주가 있는 화성시, 독산성과 세마대지, 궐리사가 있는 오산에서도 옛 정조대왕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산림 숲 구간과 문화적 콘텐츠가 풍부한, 경기 삼남길 개통 구간 지난 7월경 경기 삼남길 수원구간과 오산구간을 걸었던 바 있다. 이 길을 걸으면, 걸으면서 느꼈던 조상들의 숨결과 풍부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고, 다양한 지역의 문화도 접해볼 수 있다.이번에 확정된 경기도 수원·오산·화성구간은 총 33.4km의 길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지대비, 축만제(서호), 용주사, 독산성과 세마대지, 궐리사와 같은 문화탐방과 우거진 숲길, 물길, 꽃길, 밭길, 둘레길 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특색 있는 문화도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기념비와 조형물등도 만나볼 수 있다. 최근 들어 걷기문화가 확산되면서 수원지역에서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하고 있다.이러한 걷기문화의 확산으로 경기도 지역에서도 걷는 길 콘텐츠도 많이 개발되고 굉장히 활성화 될 것으로 보인다.그 시기에 경기도 삼남길 수원·오산·화성구간 개통은 지역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한편 경기도는 이번에 개통하는 수원, 화성, 오산 구간 이외의 삼남길 잔여구간(안양, 평택, 의왕, 과천구간)을 추가로 개발하고, 삼남길 외에도 의주길, 영남길, 경흥길, 강화길, 평해길 등 옛 도보길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또한 삼남길의 경우 경기도 외의 다른 광역자치단체에서도 개발이 진행 중에 있으므로 향후 삼남길은 국내 유일한 최장의 전국 단위 도보길로 거듭날 전망이다. 이번 경기도 삼남길 개통식 및 함께걷기 행사 오는 13일(토) 오후2시 서호공원에서 개최된다.삼남길 함께걷기 행사 사전참가신청 및 자원봉사신청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http://www.ggcf.or.kr)를 통해 할 수 있으며, 경기도,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 (사)아름다운도보여행 홈페이지에서도 연결이 가능하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개인기록물

전주-통영 시민들의 지역사랑, 수원은?

2박 3일 시민기자 워크숍을 다녀와서
전주 한옥마을 12일 오전9시 e수원뉴스 시민기자를 대상으로 시민기자의 역량강화를 위한 2박 3일의 일정을 갖고 전주시의 전주한옥마을과 경기전, 전동성당을 거쳐 통영의 충렬사, 통영시 향토역사관, 세병관, 강구안 거북선, 한산도 제승당 등을 둘러보았고, SNS활용기법과 동영상 만들기, 사진촬영기법 등의 이론 교육을 받았다.지난 12일 9시 30분, 염태영 수원시장의 뜨거운 격려와 환송을 받으며 곧 버스가 전주시 한옥마을을 향해 출발했으며 시민기자 워크숍엔 김우영 편집주간을 비롯하여 수원시 김교선 정책홍보담당관과 박사승 e홍보팀장, 그리고 30여명의 시민기자들과 3명의 블로거가 함께했다.전주로 향하는 버스에서는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교장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야생화 전문 블로거, 네팔에서 오신 분, 웃음치료사 등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열정으로 뭉친 다양한 직업의 시민들이 주를 이뤘다.분명한 것은 평범해 보여도 평범치 않은 기자단인 듯 보였고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에 또 한 번 놀라게 했다.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창밖을 보자 곧 전주시내 풍경이 보였다.수원에서 출발해 전주에 도착한건 대략 12시경 창밖으로 보인 전주시의 풍경은 가로수와 거리가 깨끗했고 수많은 관광객이 보였으며 이곳은 관광문화도시다 라는 이미지가 강해 보였다. 한옥마을 골목길 현대와 공존하는 전통, 전주 한옥마을전주는 알다시피 비빔밥으로 유명한 맛의 고장이며, 한지와 판소리, 전통문화, 그리고 전주 한옥마을이 굉장히 유명하다.한옥마을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어서 그런지 전주한옥마을 곳곳을 꼼꼼히 살펴봤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골목골목마다 느껴졌던 매력이 참 많았을 뿐만 아니라, 수원에도 이런 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부러운 마음마저 들게 만들었다.점심시간에 맞춰 전주의 명물인 전주비빔밥을 먹고 한옥마을과 인근에 있는 여러 문화재들을 둘러봤다. 서양 건축에 있어서 고딕양식 이전시대에 발달해 있었던 로마네스크(11~12세기) 양식의 건축인 사적288호 전동성당과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慶基殿)을 둘러보았다.한옥마을에서 주로 관심 있게 바라본 것은 우리 고유의 느낌이 배여 있는 담벼락 이였다. 가지각색의 담벼락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심심치 않게 하였고, 그런 담벼락은 한옥과 더불어 애정이 깃든 하나의 예술작품인 듯 보였다.또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공간들은 전통의 색이 진해 보였고 지역의 주민의 정성이 깃들어 보였다. 또한, 한지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들이 눈에 보였는데 한지로 만든 고급 모자도 이곳에선 저렴하게 판매를 하고 있었다.뿐만 아니라 작은 공간에서 밀가루 반죽을 하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면을 뽑는 것 또한 하나의 큰 관광 상품처럼 느껴졌다.이런 하나하나의 모습들은 이곳 전체가 전통이지만 현대와 공존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지역에 대한 애정을 느꼈으며 또한 수많은 지역의 콘텐츠를 발신하고 있었다.또 그러한 모습들이 수많은 관광객을 이곳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전주 한옥마을에서 느낀 점은, 어느 지역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값을 비싸게 부르거나, 정성이 없는 음식을 내 놓는다면 지역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이고 또한, 그 지역은 명소로 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그러한 점에서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지역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고, 개인 보다는 지역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개개인의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 지금의 관광명소로 발돋움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통영 동피랑마을 벽화 작은 도시 하지만 거대한 문화관광도시 통영전주에서 경기전, 한옥마을, 정동성당 등을 들른 후 오후 3시쯤 전주시를 나와 통영으로 향했다.동양의 나폴리라는 통영은 수원과 비슷한 면이 많다. 우선 수원은 효의도시이고, 통영은 충의 도시로 정신을 기반으로 한 도시다.그리고 이런 것은 다 기록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 비슷했던것 같다.수원시와 통영시에는 해당 지역의 수많은 기록물이 어느 지역보다 많이 남아있으며 지역의 소중한 문화재를 가꾸어 가고 있고 지역주민 또한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대단하다.또한, 피난민들이 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지역이 벽화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점 또한 비슷하다. 마을 골목골목 풍경은 관광객의 발길을 머물게 하였으며, 하나하나의 장소는 또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며 지역의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지역을 명소로 만드는 것은 지역에 애정을 갖고 발신하는 것 두 도시를 돌며 한 가지 느낀 점은 지역 주민이 지역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고 또한 많은 사진이나 영상과 함께 기록을 남김으로서 지역을 홍보하는 것 또한 지역이 명소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점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동피랑 마을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엔 낙후한 산동네였지만 주변을 관광했던 사람들이 항구의 모습을 보고자 동네를 들렀고 또한 그런 소문이 말과 사진, 글과 영상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더욱더 유명세를 탔다는 점이다.지금의 수원도 그러한 부분이 더욱 필요하다.수원시민기자 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 시민들이 그러한 지역의 장소를 발신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고, 또한 머지않아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처럼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발돋움 할 것이라는 기대도 해본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개인기록물

수원 북수동성당과 전주 전동성당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전주 전동성당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 동안 e수원뉴스 시민기자 워크숍을 다녀오면서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전동성당을 둘러본바 있다. 전주에 와서 왜 이곳을 들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주의 전동성당과 수원 북수동성당에는 많은 공통된 부분이 있었다.일반적인 건축물 답사를 한다고 하면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의 외관과 구조, 실내풍경을 글로 답사기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사를 들어다 보면 전동성당과 북수동성당에는 많은 공통된 부분이 있었고 또 그런 내용을 담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알다시피 전동성당은 조선 말 4대 박해 중 첫 박해인 신유박해(1801년)때 신자 500명이 체포되었으며 전라도에서만 무려 200여 명이 체포된 가운데 유항검과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고 한다.또한 한국 최초의 순교자였던 윤지충과 권상연은 정조 때 좌상인 채제공의 신망을 받아 장래가 촉망되는 선비였으나 1791(신해)년 5월에 모친상을 당하자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조상제사를 폐지하였다.그러한 이유로 진산에서 체포 되고 전라감사가 윤지충에게 유교 제사를 폐지한 이유를 묻자 "제사의 음식은 육신의 양식으로 영혼에게 음식을 드리는 것은 허례허식이다. 그리고 신주는 목수가 만든 목편에 불과하니 죽은 영혼이 물질적인 나무에 붙어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지방문화재 제178호인 전동성당 사제관 이 일로 윤지충과 권상연은 1791년 12월 8일 현재 전동 성당 자리에서 참수되고 한국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고 한다.그러한 순교지는 이곳에 전동성당이라는 성당을 짓게 했고 서울 명동 성당 내부 공사를 마무리했던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보두네 신부가 1908년에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7년만인 1914년에야 우여곡절 끝에 외형공사를 마쳤다.성당 내 모든 시설을 완비하고 축성식을 가진 것은 그 후 1931년으로 완공까지 23년이 걸렸다고 한다.지금의 북수동성당 또한 정조대왕이 승하하고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78명의 순교자 명단이 기록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이름 없이 죽어간 천주교 신자들까지 합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박해를 당하고 처형된 곳이라고 한다. 화성행궁광장 앞에 위치하고 있는 북수동 성당 북수동 성당은 프랑스인이었던 심응영(뽈리 데시데라도) 신부에 의해 건립됐으며 75평 규모의 건축물로, 수원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며 근대식 건축물로 지어졌다.심 신부가 북수동 성당을 이곳에 지은 이유는 수원화성이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거룩한 땅이며, 처절한 박해의 영향으로 전교가 어려운 곳임을 알고 이곳에 수원성당을 세웠다고 한다.그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심하게 훼손되고 수차례 보수를 하였으나 유지하지 못하고 1978년 3월 김남수 주교의 고별미사를 끝으로 헐리고 말았다고 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인 전동성당 두 곳 전동성당과 북수동성당은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수난의 역사를 같이하고 있고 비슷한 점도 많았다.하지만 전동성당은 그러한 역사를 안고 관광자원으로 개발되고 있고 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었다.수많은 사람들이 건축의 외관만 보러 왔을 거라는 생각을 안한다. 나름 순교지의 그러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왔고 그러한 성지를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를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수원화성내에도 그러한 성지가 있다. 북수동 성당의 그러한 역사를 알리고 또한 관광자원으로 더욱 개발한다면 수원과 수원화성을 찾는 관광객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해본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개인기록물

화령전과 성신사에선 왜 분향을 할수 없을까?

한산도 제승당에서 수원 화령전과 성신사를 생각하다
한산도 제승당에 있는 충무사 항상 답사지를 가게 되면 왜 그곳에 갔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그리고 그곳에서 작은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답사라는 건 그러한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 또한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e수원뉴스 워크숍 일정에서 찾은 여러 장소와 다양한 의문점, 그리고 그곳에서 찾은 답은 곧 "우리 지역의 발전 방향에 대한 해답을 찾아 오는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워크숍일정 마지막 날인 지난 24일 아침을 일찍 먹고 시민기자 일행은 아침부터 버스에 올라탔다. 오늘 오전으로 모든 일정이 끝나게 되는데 전체일정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장소인 제승당을 찾아가는 건, 전체 일정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깃든 곳한산도 '제승당' 통영항구에서 배를 타고 20여분 뱃길로 그리 멀지 않는 한산도에 위치한 제승당.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조선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세계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룬 후, 제승당을 짓고, 선조 26년(1593)부터 선조 30년(1597)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아 제해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유서 깊은 사적지며 영조 15년(1739)통제사 조경이 중공하고 1959년 사적으로 지정하면서 여러 차례 보수하게 됐다. 향을 피울 수 있게 되어 있는 충무사 또한 이곳은 제승당을 비롯하여 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유허비, 그리고 많은 송덕비, 사정, 수루 등 부속시설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으며 수려한 주변 경관과 더불어 당시 조선 수군본영의 면모를 되찾아 볼 수 있었다.충무공 이순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거북등대, 한산대첩기념비 등의 조형물도 곳곳에 세워져 있다.그리고 이곳에서 20여분 둘러본 결과 우리 지역과의 작은 차이점을 발견하게 됐다. 작은 차이점이지만 크게 느껴진 건 왜 그랬던 것일까?제승당으로 들어가면 가장 안쪽에 충무사라는 건축물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 성웅 이순신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무사 안쪽에서 향을 피워 이순신 장군의 넋을 기리고,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정신과 업적을 계승한다는 묵념도 함께 했다.어찌 보면 영정 앞에 향을 피운다는 것은 작은 의식이지만 인근에 있는 여러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보는 것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작은 의식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정신이 마음속에 이어오는 듯 했으며 성웅 이순신 장군에 대한 생각을 한차례 더 할 수 있게 됐다. 정조대왕의 영정이 있는 화령전, 화령전에선 향을 피울 수 없다. 정조대왕의 영정이 있는 화령전과 화성신을 모신 성신사수원에도 그러한 정신이 깃든 곳이 두 군데 있다.정조의 영정을 모신 '화령전'이 그렇고, 얼마 전에 복원된 '화성신'을 모신 팔달산 중턱에 있는 '성신사'가 그렇다.하지만 화령전과 성신사에는 화재의 위험, 문화재 보호 등으로 인해 향을 피울 수 없게 되어 있다.그렇다면 이순신장군의 제승당은 화재 위험이 없을까? 일본과 중국의 수많은 사찰과 도교사원, 신사 등 문화유산에서도 대부분 향을 피운다. 말이 않되는 핑게다.아무튼 분향을 못하게함으로써 정조의 정신과 효심, 사상을 수원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기릴 수 없는 형태가 되어버렸고 그저 그런 건축물이 있는 기냥 둘러보고 마는 건축물 하나에 불과했다.수원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에게 효의 정신과 정조대왕의 위대한 정신을 알려주고 이어가게 한다면, 언제라도 화령전과 성신사에 향을 피워 그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그런 변화도 지역에선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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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년의 지명의 역사..율전동 밤밭 축제

제2회 율천동 밤밭축제와 밤밭 청개구리 공원을 다녀오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벼베기 등 농촌체험을 하고 있다. 10월은 축제의 계절이라 했던가! 수원지역에선 거리와 동네마다 축제와 행사가가 한참이다. 지난 20일 가을이 무르익을 쯔음 '밤밭 청개구리 공원' 개장식과 더불어 올해로 2회를 맞는 '율천동 밤밥축제'를 찾아가 보았다. 예전부터 이곳을 왜 밤밭이라고 했을까? 또한 이 지역 인근에 밤밭 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보이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지명의 유래가 궁금했었고 수원에서도 시 외곽지역에 있는 이곳을 한번쯤 찾아보고 또 사진도 많이 찍어보고 싶었던 곳 중에 하나였다. 의왕시와 경계면을 이루고있는 율전동 율전동에 있는 밤밭이라는 지명은 장안구 율전동의 한글 이름이며, 윗밤밭[上栗田]과 아랫밤밭[下栗田]으로 나뉘어져 있다. 밤밭은 말 그대로 밤나무가 많아 지어진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 이곳이 밤밭이라 부르게 된 연유는 300여 년 전에 염씨, 강릉 유씨, 인동 장씨 등 3성(姓)이 자리잡은 뒤부터 마을에 밤나무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하며 이곳에서 자손들이 번성해 지금까지도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다고 한다. 평상시 시내 중심가에서 시 외곽의 동네를 가기는 쉽지는 않다. 그러나 동네에서 특색 있는 축제나 행사가 있다면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또한 그곳에 가면 그곳의 독특한 이미지를 담으려 노력을 하게 된다. 사람이나 지역이나 과거에 어떠한 역사를 지니고 어떠한 일을 했던 것 보다 현재의 그러한 전통성과 정체성을 어떻게 이어가려고 한다는 것과 지역의 발전성과 미래를 그려 간다는 게 더 중요할지 모른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과거에 어떤 일을 했던 것 보다는 지역에서 현재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이며 지역의 발전을 위해 꿈을 그려가고 또 그 꿈을 하나하나 펼쳐간다는 것에 대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 지역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지난 20일 개장한 밤밭 청개구리 공원 전경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지닌 율전동 '밤밭 청개구리 공원' 지난 20일 개장한 밤밭 청개구리 공원은 밤밭저수지 일대 2만5천㎡ 규모로 조성되었으며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아치형 목교가 설치되고 저수지 안 인공섬에 육각정자와 저수지 주변으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공원을 한바퀴 돌아보면 곳곳에 늪지가 조성되어 어린이를 비롯해 늪의 생태 환경을 알아볼 수 있게끔 되어있고 어린이 놀이공원을 비롯해, 숲속놀이시설, 관찰학습장과 배드민턴장, 게이트볼장, 족구장 등이 있다. 공원을 조성한 밤밭저수지와 습지에는 수원청개구리가 돌아오고 율전동 일대 환경을 보존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공원 이름을 밤밭 청개구리 공원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역에 어린이들이 많다는 점도 이곳을 어린이가 생태환경과 더욱 친근하게 접근이 가능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이곳을 둘러보면 어렸을 적 논과 개천 그리고 숲속에서 놀았던 그 옛 추억이 이곳에서 아련히 떠오르게 한다. 생태 늪지를 바라보면 어린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내년 여름철이 되면 이곳엔 더 많은 어린이들이 놀러와 자연과 함께 즐기는 놀이공간이 되어 보일 듯해 보였고 또 그러한 추억은 아이들의 감수성을 발달시키고 또한 어른이 되면 이곳에서 놀았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수원지역에 이런 생태공원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은 많이 사라진 생태 공간이지만 밤밭 청개구리 공원처럼 수원 곳곳에 조성해 우리 후세들이 자연을 느끼며 자라고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때, 미래엔 수원의 생태 콘텐츠도 더욱 풍성해 질 것으로 본다. 밤밭 축제 한마당 지역 주민과 함께한 밤밭 축제 이날 공원 개장식과 더불어 11시부터 열렸던 제2회 밤밭축제는 많은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 축제는 좋은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의 정체성을 찾고 주민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며 특히, 생태공원과의 밤밭청개구리 공원 준공식과 같이 진행되어 더욱 풍성한 축제로 진행되었다. 축제는 각종 공연 및 장기자랑 등의 화합마당이 펼쳐졌으며 페이스페인팅, 사생대회, 한지공예전시, 벼 베기 행사, 알밤 투호던지기 등의 부대행사가 마련되었고 먹거리 장터 등을 운영했다. 특히 어린이를 동반한 많은 가족들이 찾아와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를 즐겼으며 벼 베기 둥의 농촌 체험을 하며 축제를 즐김으로서 의미 있는 지역축제의 공간으로 잡아가고 있었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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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은 수원화성 축성 216주년 되는 날

화성시 구포리~화성행궁과 성신사까지 총 22km 걷기로
오는 24일(음력 9월 10일) 은 수원화성 축성 216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날을 맞이하여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한.중.일 전통목조건축 대목장의 세계 특별기획전이 열리기도 한다.올해로 216주년을 맞이하는 수원화성 축성은 조선 후기 정조시대인 1794년 1월 7일 착공하여 1796년 음력 9월 10일 완공하게 된다. 2년 6개월간의 5.3km의 성곽건축에 있어서 세계사에 이름이 남을만한 수원화성을 이렇게 빨리 축성이 가능하게 된 배경을 뭐였을까?1796년에 완공된 수원화성은 5.3km 창룡문, 화서문, 팔달문, 장안문 등 총 4개의 문과 마흔개 이상의 시설물을 갖춘 대규모 성이다. 또한 주변 국가인 일본 히메이지 성의 건축기간이 8년 정도 걸렸고, 중국 자금성의 건축기간이 14년, 그리고 수원화성은 34개월 만에 거대한 건축물이 완공됐다. 수원화성 축성시 처음엔 10년을 예상했다고 한다. 이렇게 빨리 건축이 가능했던 배경은 수원화성에 동원된 모든 일꾼들에게 일한 만큼 임금을 줬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추위에 떨 일꾼들을 위해 방한모와 같은 의복류를 지급 및 반나절을 일한 백성에게도 그에 합당한 인건비를 지급했고 부역 도중 부상을 당한 백성에게는 즉시 치료를 받게 하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는 인부들에게 있어 사람으로 대접받고 그에 따른 자긍심과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게 만들었다.또한 각 건축물마다 사람과 인원을 고정적으로 배치하고 기간 내 완공이 가능하게끔 책임제로 운영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책임제는 일할 수 잇는 분위기와 더불어 서로 경쟁을 하게끔 만들었겠고, 축성시기를 앞 당길 수 있게끔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특히, 과학적인 축성법인 정약용의 거중기와 농로, 유형거를 활용한 성곽건축 방법도 짧은 시일 내 축성이 가능하게 했다.화성축성 216주년을 맞이하여 뭔가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일은 없을까? 기자는 의미있는 일을 만들고자 수요일 오전 수원화성 축성의 길인 화성시 구포리에서부터 화성행궁과 성신사까지 총 22km를 걸어 보고자 한다. 수원화성 축성의 길은 수원화성에 필요한 축성의 물자를 화성시 구포리에서 시작해 수원화성까지 운반한 길을 말하는데 구포리 지역에서 어천저수지, 호매실교, 서울대농대부지, 항미정, 여기산, 숙지산, 화서문, 화성행궁, 성신사까지의 길이다.수원사람으로서 수원화성의 위대함음 알고 아름다운 수원화성을 위해 뭔가 작은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퍼포먼스를 행하는 것도 나름 지역에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게된다.팔달산에 있는 성신사에 가서 화성신에게 묵념을 한다거나, 수원화성을 한바퀴 걷는 다거나 한.중.일 전통목조건축 대목장의 세계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는 화성박물관에 가서 수원화성에 대해서 알아보고 기획전을 관람하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오는 24일 화성축성 216주년을 맞아 자신만의 의미있는 퍼포먼스를 만들어 보자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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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1박2일’ 전통시장 탐방도 빼 놓을 수 없다

‘수원1박2일‘ 코스와 연계한 전통시장 탐방길
지난 11월 초 팔도를 대표하는 파워 소셜러들과 팸 투어를 함께 한 적이 있다.1박 2일간 있었던 팸투어는 수원화성과 지동벽화마을을 비롯하여 노을빛하늘무대, 노을빛전망대, 화성박물관, 화성행궁을 두루 둘러보는 코스인데 1박 2일간 있었던 모든 일정은 지동시장에서 마무리가 된다.점심을 먹은 오후 2시경, 이틀간 함께 했던 일정을 마무리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지역에 여행을 왔는데 기념품 하나 없이 간다면 뭔가 허전할 것이다.또 하나 수원에서 자랑거리를 더 소개한다면 인근에 있는 다양한 테마가 있는 전통시장 탐방도 구경해볼만하다. 수원도심의 허파역할을 하는 수원천 사이로 양 옆에는 수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전통시장이 많이 있다.인근에만 해도 지동시장을 비롯해 미나리광시장, 못골종합시장, 남문패션1번가, 팔달문시장, 영동시장, 로데오거리, 구천동공구거리, 행궁길 등이 있다. '수원1박2일'을 체험한 관광객에게 수원에 대해 어떤 걸 더 소개하면 좋을까? 또 쇼핑은 어디서 하면 좋을까? 라는 생각에 만든 '수원 전통시장 탐방길'을 지금부터 안내하고자 한다.전통시장 탐방길 주요 경로는 지동시장에서 출발 미나리광시장(추억의 도너츠) -> 못골시장(아들네, 도자기풍경, 통큰칼국수, 대호반찬, 족발나라) -> 수원천(인근 구천동 공구상가) -> 거북산당 -> 남문패션1번가 -> 팔달문시장 -> 유상박물관 -> 영동시장 -> 옛 중앙극장 -> 팔달사 -> 로데오거리 - > 행궁길(공방거리와 맞촌) -> 화성행궁 주차장 안 쉼터 미나리광시장 미나리광시장 지동시장에서 나와 바로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면 '미나리광시장'을 만나볼 수 있다.미나리광시장은 얼핏 보면 규모가 굉장히 작아 보여도 1950년대부터 상인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한때는 시장 규모가 굉장히 컸던 곳으로 지금은 50여개의 상가가 성업 중에 있다.어디에서나 전통시장엔 명물이 있는 법! 이곳 역시 눈여겨 볼 곳이 여러 군데 있다. 바로 40년 전통 '추억의 도너츠' 특히 추억이 새록새록 담겨있는 도너츠 맛은 인근에서도 최고로 손꼽을 뿐만 아니라 값도 저렴해 2000원~3000원이면 한 봉지에 하나가득 담아갈 수 있다.미나리광은 양옆으로 지동시장과 못골시장을 이어주며 안쪽으로 여러개의 상점들이 밀집해 있으며 큰길에는 안보이지만 못골시장 신성기물 옆길로 들어가면 지동뻥티기, 옥돌방앗간, 붕어빵 등 추억이 새록새록 나는 추억의 모습 그대로인 상가들도 만나볼 수 있다.미나리광시장을 지나면 바로 못골종합시장이라는 꽤 유명한 시장을 만나게 된다. 못골종합시장 이야기와 음악이 있는 곳 '못골종합시장'원의 시장 중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못골시장은 어렸을 적 기억엔 작은 시장 이였지만 지금은 100여개의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고 현대화 시설이 완료되면서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2000년도 때만 해도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이 수원지역에 많이 들어서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만 지금은 전통시장의 시설 현대화와 깨끗하고 세련된 거리, 사람들의 보행로가 확보하고, 상인들의 열린 마인드로 지금은 주말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수원의 시장중의 하나가 됐다.이곳에도 여행객에게 필요한 쇼핑을 할 수 있는 상점들이 있다. 조금만 들어가면 생활자기, 옹기제품 등 도자기를 파는 '도자기 풍경'이라는 상가가 있는데 이곳엔 각종 도자접시, 그릇, 화분 등 생활에 필요한 도자기뿐만 아니라 집안이나 카페 등 실내공간을 아름답게 만들어줄 전시용 도자기 등도 판매를 한다.도자세상을 구경하고 바로 나오면 심상치 않는 크기의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녹두빈대떡 모습을 보게 된다. 간혹 목이 출출해지면 녹두빈대떡에 막걸리 한잔하면 만원이면 해결할 수 있다.우측엔 각종 약초를 파는 가게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간혹 계절마다 몸에 좋은 차에 쓰일 약초나 열매 등을 구할 수 있다. 해장에 좋다는 열매라던가, 피를 맑게 해준다는 약초라던가, 피로회복에 좋다는 무슨 열매라던가, 한 개 정도 구입해서 계절에 맞는 차를 마셔보는 것도 좋은 쇼핑이 될 수 있다.요즘 현대인에 있어서 커피 등을 너무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젊었을 때는 그 맛이 길들여 좋을지는 몰라도 세월이 조금 지나면 커피보단 이런 순수한 열매로 끓여먹는 차가 더 좋다는 걸 느끼게 된다.수원 지역의 전통시장에는 족발집이 하나 이상은 꼭 있는데 특이하게도 시장에서 먹어본 족발집은 대부분 맛있다. 특히 못골시장에는 족발집이 3개정도 있는데 '족발나라' 라는 곳이 꽤 유명한 족발집중의 하나다.유명세로 인해 이곳에서는 당일 나오는 족발은 거의 대부분 팔리는 경우가 많다.족발나라를 지나 바로 보이는 곳이 대호반찬인 곳인데 이곳은 반찬수가 꽤 많고, 하루 판매하는 물량도 엄청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중에 하나다.앞모습은 반찬을 진열해 놓고 편안히 판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면 10여명의 아주머니들이 각종 반찬들을 만들고 있는 풍경을 접해볼 수 있다. 전통시장이라는게 그런 거 같다. 이런 반찬을 만드는 모습만 봐도 정말 재밌고 사람 사는 풍경을 느낄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이런 모습을 구경하며 함께 웃고 즐긴다면 또 아이들과 함께 체험한다면, 이보다 더한 전통시장 체험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대호반찬 옆길로 들어가면 착한가게도 만나볼 수 있다. '통큰칼국수' 집으로 잔치국수 2000원, 칼국수 3000원의 가격으로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특히 이곳은 수원에서도 착한가격으로 유명해 주말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못골시장엔 반찬가게뿐만 아리나 떡집과 간간히 요기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이 줄지어 있어 혹시나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있다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그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게 된다. "수원천 복개구간에 아이들이 돌아왔어요!"못골시장에서 나와 중동삼거리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첫 번째 만나는 다리가 이번에 수원천 복개구간의 중간쯤 되는 곳이다.이곳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인근에 있는 거북산당과 이곳 수원천 복개구간을 소개하기 위해서다.이곳의 수원천 구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콘크리트로 덮은 구간으로서 최근에 덮은 구간을 걷어내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재탄생 하였고, 무엇보다 최근엔 어렸을 적엔 결코 볼 수 없었던 장면인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노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것에 놀라움마저 들게 만들었다.70년대~80년만 해도 이곳의 물은 거의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오염이 심했던 곳 이였고 각종 생활오폐수는 물론 생활쓰레기 등이 둥둥 떠다닐 정도였으며 악취 또한 인근주택가 까지 풍길 정도로 심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물을 깨끗해지고 콘크리트로 덮여있는걸 걷어내고 현재는 지금의 수원천을 보면 마음이 뿌듯해지며 보는 것만 해도 기분이 좋게 된다.아이들이 수원천을 찾았다는 것은 곧 아이들과 함께 부모가 왔고 인근의 시장도 함께 다녔을 터였다.현재 수원천은 여름엔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가족과 함께 휴식공간으로, 가을엔 아이들이 잠자리를 잡는 자연체험 공간으로 탈바꿈 하고 있으며, 간간히 악기를 가지고 나와 수원천 복개구간 이곳저곳에서 악기를 두드리며 음악을 선물하는 거리 악사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고, 야경 또한 주변 경관과 어울러 아름다운 경관을 뽐낸다.꼭 시간이 된다면 사진으로 담아보는 것도 나름 즐거운 수원여행이 될 수 있다.수호신이 깃든 '거북산당' 수원천을 지나 조금만 더 올라가면 카페가 하나 보이고 우측으로 들어가면 바로 거북산당을 만나볼 수 있다.거북산당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곳의 전통시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된 거북산당은 영동시장의 번영과 상인들의 편안을 위해 1790년에 창건되었으며 들어가는 입구 쪽에 예전엔 거북 모양의 작은 언덕이 있었다고 한다.현재는 중동삼거리에서 동수원사거리 길을 내 그 언덕을 깎아 도로를 내어 옛 거북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거북산당 내부에는 제단과 도당할아버지, 할머니, 염라대왕의 채색벽화가 있고 음력 7월 7일과 10월 7일이면 영동시장 번영회과 중심이 되어 시장의 수호신인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남문 패션거리1번가'거북산당을 지나면 바로 '남문패션1번'가 거리가 나온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만 해도 10대와 20대 학생들이 즐겨 찾았던 일명 수원의 '메이커거리' 그 당시만 해도 메이커 상가들은 꽤 인기가 있어 이곳에서 FILA, 리복, 나이키, 아디다스, 리바이스 청바지 등 유명메이커 점포가 입점, 전국 5대 상권에 들 정도로 매출 또한 높은 기록을 했던 곳이었다.그러나 인근 백화점과 근교 아울렛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상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바로 위 중.노년층이 주로 찾았던 팔달문시장의 중저가 브랜드 패션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메이커 상점들이 줄줄이 시장을 떠나게 된다. 현재도 이 같은 공동화 현상으로 유명메이커 점포뿐만 아니라 비메이커 점포등도 빠져나가는 추세다.하지만 지금은 다시 번영했던 당시를 재건하고자 상인회가 주축으로 해마다 남문패션1번가 거리축제가 열고 있으며 이미 유명메이커들은 백화점 등의 고급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면서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든 점을 감안 타 업종으로의 전환을 위해 계획을 수립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현재는 그러한 남문패션1번가의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예전엔 볼 수 없었던 음식점들이 거리를 하나 둘 들어서고 있으며 인근 영동시장, 팔달문시장 등이 있어 이곳을 연계한 다양한 먹거리 위주로 만들어 가는 것도 보다 많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왕이만든 시장인 '팔달문시장' 남문패션1번가 거리를 지나 곧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를 만나게 된다.이곳은 팔달문시장으로 수원에서도 중심가를 차지할 정도로 그 규모도 크고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기도 한다.팔달문시장엔 가방, 신발, 의류전문점이 많으며 값도 저렴해 젊은층과 중.노년층에도 세대별 맞는 다양한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어렸을 적 80년대 중반 수원에서도 첫 번째 백화점 이였던 크로바백화점이 들어서 있어 특히 학생시절엔 자주 놀러왔던 장소 중 한곳이다.영동시장과 팔달문시장을 경계를 이루는 중간쯤엔 이천과 여주 도예촌에서 직영 운영하는 할인매장이 있는데 이곳의 도자기 또한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도자기들은 구입할 수 있다. 특히 막걸리를 좋아해서 이곳에서 옛 막걸리병과 막사발 잔을 샀는데 막걸리 병은 만 원 정도 하고 잔은 2~3000원 했던 거 같다. 유상박물관 양 옆으로 상가들이 줄지어 있는 길을 따라 팔달문시장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것이 유상박물관이다. 유상박물관은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성하면서 도성내의 상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전국에서 상인들을 모집하였고 지금의 팔달문시장의 기원이 되었으며 박물관 안에서는 팔달문시장에 대한 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수원상인들의 기원과 현재 상인들의 삶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유상박물관 앞에는 나름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정조대왕 동상을 만나볼 수 있는데 특히 어린이들이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사진을 많이 찍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겨울철에는 술병에서 물이 나오지는 않지만 여름철에는 자리에 앉으면 술병에서 물이 나오게 된다.'100년 전통 수원 '영동시장'유상박물관에서 나와 좌측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이곳은 한복전문점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는 영동시장을 만나볼 수 있다. 영동시장은 1919년 이후 문밖시장, 또는 성외 시장 등으로 불리면 4일, 9일 장이 섰던 수원의 대표적인 장터로서 30리 밖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많은 사람이 붐볐던 곳이다. 일제 감정기엔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인근에 고을이 커지자 상업이 번영하라는 뜻으로 영정시장이라고 하였다가 '1949년 수원시로 승격되면서 영동시장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현재 영동시장에는 총 170여 개의 점포가 들어서 있으면 이중 한복전문점은 40여개에 이르고 의류, 커튼 등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많고 2층엔 스포츠센터, 주방용품점 등이 있다.특히, 요즘은 개량한복 등이 많이 나와 생활 속에서 입을 수 있는 다양한 한복들이 많다. 집에서나 혹은 야외활동하기 좋은 개량한복 등을 구입해 입어보는 것도 나름 '수원1박2일'의 추억을 남기는 것도 나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다.영동시장과 팔달시장을 나와 인근에 있는 '팔달사'도 들러볼만하다. 팔달사는 수원도심 한가운데 있는 팔달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1917년 금강산 유점사의 비구니 윤홍법당 스님이 이곳에 최초로 사찰을 건립했다고 전해지고 있다.특히 최근에는 팔달사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3층 석탑 조성식을 가졌는데 봉안된 진신사리는 모두 10과로 250여년전 티베트와 네팔 국경에 위치한 카이라스대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굴돼 그동안 티베트 간둔쟘군링사원에서 봉안해 왔던 5과와 나머지 5과는 1998년도에 혜광스님이 속리산 법주사 주지를 할 때 태국에서 수행하던 대암스님에게 태국 종정스님으로부터 봉정받은 것을 대암스님이 혜광스님에게 봉정하여 13년 동안 모시고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봉안하게 됐다고 한다.또한, 진신사리가 봉안된 3층석탑 탑신부분은 석가탑의 모양과 보륜부분은 실상사의 보륜을 본떠서 만든 수준 높은 석탑작품으로 평가될 것으로 기대도 된다고 한다.'로데오거리' 팔달문시장을 나와 중앙극장 간판이 있는 건물로 지나가 팔달사 입구에 이르면 좌측이 로데오거리, 우측길이 행궁길로 가게 된다.로데오 거리는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젊음의 거리로 유명했다. 특히 인근에는 대한극장, 수원극장, 중앙극장 등이 밀집해 있고 각종 의류점과 먹거리 또한 많아서 지금의 수원역 테마거리 처럼 사람들이 항상 북적였던 곳이었다.하지만 이곳 또한 시대에 맞물려 지금은 유동인구가 많이 줄었으며, 현재는 인근에 있는 학원거리와 시장상인회가 힘을 합쳐 문화가 있는 거리로 새롭게 만어가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행궁길 '아름다운 행궁길'화성행궁으로 가는 길엔 행궁길이 있는데 이곳은 최근 거리조성공사와 각종 테마가 있는 벽화, 간판조성 작업등으로 한결 깨끗해진 행궁길 거리를 만나볼 수 있다.이곳엔 특히 공방거리가 맛촌이 형성돼 있는데 이곳에는 나녕공방(칠보공예)을 비롯해 행궁공방, 나무아저씨, 수원화성홍보관(종합관광상품), 행궁길 갤러리, 림아트 갤러리(섬유), 호두야자(전사인쇄), 은향공방 등이 있어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또한, 엄마생각, 단오떡카페, 통영 굴사랑 등 유명한 맛집과 분위기 있는 카페도 둘러볼만 하다. 이로서 체험관광 코스인 '수원1박2일'과 연계한 '수원 전통시장 탐방길'도 마무리 된다.이틀간 수원을 다 보여줄 수는 없지만 한번쯤 수원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이 코스를 가족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돌아보는 것도 즐거운 '수원 1박 2일'이 될 수 있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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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거리 서점들

특별한 수원, 수원엔 감춰진 이야기가 수없이 많다. 수원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서점들이 즐비하게 있었던 남문서점가 20일, 팔달문 부근에 있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A씨는 지하 서점내에서 손님이 오는지 안 오는지 밖만 쳐다보고 있다. 이내 한숨을 푹 쉬며 요즘 책을 찾는 사람들이 적어졌다며 지역의 헌책방을 비롯해 중·소 서점들은 하나같이 서점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한다.수원지역도 이럴진데, 다른 지역은 또 어떨까?전국적으로 동네 서점들은 90년대 중반 레코드가게처럼 하나씩 하나씩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슬며시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건가요?" 물어보니 걱정이 많은 듯"요즘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요즘은 책방을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로, 경기가 안 좋은 듯합니다. 찾는 손님들이야 있지만 이곳같이 헌책만은 마니아층만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하며 이내 손님이 들어오자 반가운 듯 손님에게 책을 안내하러 간다.천천히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동네서점의 이런 풍경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시대가 그만큼 빠른 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고 서점 또한 레코드가게처럼 하나하나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1910년대 성안 풍경 수원관련엽서를 발행했던 창광당 서점 수원지역에서 서점이 처음 있었던 시대는 대한제국시대 까지 올라가게 된다. 1900년대 초 수원에서 처음으로 서점을 연 '청광당'이라는 서점이 있었다.수원읍에 자리 잡은 청광당 서점은 당시 아예 '수원의 명소'라는 시리즈로 엽서를 제작하기도 했다고 한다.일제시대 조선총독부는 앞 다투어 조선의 풍경은 카메라에 담아, 그 중 일부는 조선의 풍속과 명승고적을 소개하는 엽서로 만들었고 또한 당시 화성과 수원팔경의 아름다운 경관도 엽서에서 자주 단골로 등장했다.그런 엽서를 청광당에서 판매를 했고 또 당시 각종 고서적 뿐만 아니라 신간서적들을 판매 했을 것으로 보인다.세월이 지나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팔달문 인근에 서점이 처음 들어선 것은 교학사였다.교학사가 들어서면서 팔달문 인근엔 성 안쪽의 헌책서점들과 성 밖의 서점가들이 들어서면서 70년대부터~90년대까지 남문 서점가는 호황을 맞는다.2000년대 초반 팔달문 시장의 침제와 맞물려 서서히 서점거리에도 침제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당시 청소년들은 팔달문 인근에 있는 서점을 찾기 보다는 PC방이나 햄버거집 등으로 다니면서 그 시대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한다.2000년대 들어서면서 거리를 매웠던 지역의 서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팔달문 인근에 위치한 남문서점거리의 명맥을 겨우 유지했던 동학서점(교학사)도 결국 지난 8월 문을 닫고 만다. 지난 8월경 남문서점거리의 명맥을 유지했던 동남서적도 문을닫고 만다. 60년대부터 서점을 열었던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 중 하나인 동남서적은 처음엔 서울에 있었다가 70년대 팔달문 인근으로 이전하면서 이곳에서 40년간 운영했던 그야말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수원의 대표적인 서점 중 하나였다.또한, 이곳은 동학서점을 비롯해 3~4개 대형 서점들이 있었는데 서점이 문을 여는 오전이면 책을 수레로 실어 나르는 풍경을 자주 접했던 곳이다.길가엔 많은 책들을 쌓아놓고 하나씩 서점 안으로 옮기는 풍경을 중·고등학생 시절 버스 안에서도 자주 목격을 했었지만 이제는 그런 풍경은 추억 속 장면으로만 남아있다. 20대 시절 이곳 서점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던 추억이 있다.수북이 쌓여있는 책 숲 사이로 손님이 원하는 책들을 신속히 찾아주는 것도 일중의 하나였다.또한 인근에 수원사람들의 약속장소였던 중앙극장이 있던 시기는 사람들이 약속시간 보다 빨리 왔을 땐 이곳에서 간간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는 장소이기도 했다.크리스마스 시즌엔 길가에서 보면 오색찬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빛을 내고 창문 앞에서 길게 서서 책을 읽던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있다.9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한 인터넷 시대와 더불어 90년대 후반 온라인 서점들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 동네서점들은 수원 같은 대도시에서도 한두 개의 대형서점을 제외하곤 중·소 서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는 추세이다. 팔달문 인근에 있는 오복서점 지금의 어린이들의 문화를 들여다보면, 너무 게임에 빠져 사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봐도 그와 비슷하게 폭력적인 게임물을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렇다면 책을 많이 읽은 어린이들과 책을 멀리하고 게임을 접한 아이들에겐 어떤 차이점이 오게 될까? 아마도, 자라면서 인성과 성품에 차이가 커지고 또한 어렸을 적 위인전을 수백 권 읽은 어린이들은 나이를 먹게 되면 그 위인 같은 인성과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또한 동화책을 많이 읽고 자라는 어린이들은 분명한 것은 감수성이 매우 발달하게 되고, 과학서적 이나 소설 등을 읽어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오랫동안 시대의 낭만이 있었던 서점에서, 추억이 사라지는 현실에 깊은 아쉬움이 남기며 책을 더욱 소중히 하고, 잊혀 질지 모르는 동네서점에서 아이들과 함께 또는 친구들과 추억을 담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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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할머니가 인계동 동장에게 일러바친 것은

인계동 주민센터 김장김치 담그던 날 생긴 일
김치를 받으며 기뻐하는 윤경자(71) 할머니 21일, 인계동에 사는 윤경자(71) 할머니, 아침부터 문 밖만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오늘 동사무소에서 김장한다더구먼..."하며 윤 할머니는 김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그러면서 "김치를 직접 받으러 갈까봐"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한다.이내 김치를 직접 받으러 가야겠다며 동네에서 김장에 참여하는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니 직접 받으러 가는 것이 더 도리라고 생각을 한 듯하다.21일 찾아간 윤 할머니의 방안은 허름한 살림살이와 박스 등이 좁다란 공간에 하나 가득 들어차 있고, 가전제품은 꼭 필요한 TV나 작은 냉장고 하나 들어가면 꽉 찰 듯 좁은 공간으로 보였다.윤 할머니는 이곳에서 홀로 사신다. 홀로 살아서 생활에 불편한 모습이나 외로워 보일 거라고 생각한 얼굴은 뜻밖에 매우 밝아 보였다. 그것은 인계동 주민센터와 따뜻한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윤 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인계동 주민센터에 보호대상으로 올라있다.그동안 인계동 주민센터는 윤 할머니를 위해 김치며, 밑반찬 등을 제공했으며 통장을 비롯하여 봉사자들은 수시로 전화 방문을 드려 불편한 곳이 없는가 안부를 묻기도 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윤 할머니 집을 방문해 집안일을 돌보기도 했다.사회복지사는 거동이 불편한 윤 할머니를 위해 생활에 필요한 것이 없는지 불편한 사항이 없는지 꼼꼼히 체크하는가 하면 또한 동에서는 쌀과 김치, 반찬 등을 할머니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열심히 김장을 담그고 있는 주민들 윤 할머니가 방안에서 애태우며 기다리던 그 시각, 인계동 주민센터에서는 임용채 인계동장을 비롯한 주민 130여명이 나와 윤 할머니처럼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이웃을 위해 김장김치를 담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미 하루 전부터 분주했던 봉사자들의 손놀림은 이틀째 이어졌고 피곤한 기색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김치 속을 버무리고 있는 주민들이 모습이 활기차 보였다.오늘 준비한 배추는 1000통, 양념만 해도 엄청나다. 이른 아침부터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이웃을 위해 온정을 펼치는 주민들은 힘든 기색이 없이 잔칫집에 온 듯한 함박웃음이 가득했고, 사람들의 표정엔 뿌듯해 하는 웃음이 가득했다.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세 부류로 나눠, 한 팀은 배추와 양념을 나르고 한 팀은 배추 사이에 양념을 넣고 마무리하며 나머지 한 팀이 그 배추를 통에 담아 가지런히 쌓아놓았다.오후1시, 많은 사람들의 봉사로 인계동 주민센터 주차장에는 어제부터 김장한 김치통의 김치가 주민센터 앞마당에 쌓였다. 임용채 동장은 제일먼저 윤 할머니에게 배달할 김치를 들고 인계동 윤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한 시각이라도 빨리 윤 할머니에게 김치맛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다.임 동장은 "인계동에는 어려우신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인계동은 규모가 크고 중심가를 이루고 있어 소외계층과 홀몸 노인 분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1번 국도를 경계로 반대쪽은 구 도심지역이여서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고 계시는 윤 할머니처럼 홀몸 노인분들이 많으신데 많은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그 분들에게 김장김치를 전달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라고 말하면서"주민 분들은 부모님 같기도 하고 또한 형제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그 의미를 부여했다.윤 할머니집은 인계동 주민센터와 걸어서 10여분 거리 언덕배기에 있었다. 임 동장은 그 길을 걸으며 무릎도 좋지 않은 윤 할머니가 이 언덕을 올라 다녔을 것을 생각하니 맘이 편치 않았다. 몇 차례 언덕을 돌아보면서 도착한 윤 할머니집, 계단을 올라가 문을 두드리니 한동안 인기척이 없다.윤 할머니를 두세 번 부르니 이윽고 방문이 열렸다. 윤 할머니는 순간 뜻밖의 김치가 배달돼 올지 몰랐던 모양이다.윤 할머니는 "어떻게 나까지 챙겨주느냐,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임 동장과 봉사자들을 맞이했다. 임 동장은 방으로 들어오라는 윤 할머니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실내와 살림살이를 살펴봤다. 화장실까지 다 둘러본 임 동장은 그제야 할머니 앞에서 방안의 온기를 살폈다. 윤 할머니는 오랜만에 만난 동장에게 그동안의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따듯한 이웃들이 있어 항상 반찬들을 만들어 보내주신다며 요즘 배추 값이 비싸 김장은 꿈도 꾸지 못하는데 이렇게 올해도 보내주셨다며 고마워했고, 또 봉사자들이 얼마 전에 반찬이며 음식들을 주고 간 일, LH공사에서 살 곳을 마련해 준 일, 동사무소 직원이 건강검진 받으라며 일일이 챙겨준 일등 많은 분들이 도와준다며 외롭지 않다는 등 윤 할머니의 입은쉴 틈이 없어 보였다.임 동장은 고개만 끄덕이며 김 할머니의 손만 꼭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을 잡은 것만으로도 할머니의 고마움이 전해졌을 터, 이내 인사를 하고 못내 아쉬운 듯, 또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한다. 김장을 담은 상자를 함께 나눠주며 기뻐하고 있다 지난 20일과 21일, 인계동 주민센터는 겨울을 앞두고 불우한 이웃 주민들을 위해 김장담그기 행사를 진행했다. 이틀간 총 130여명의 새마을부녀회 단체 회원과 주민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 총 1000통의 김치를 담가 홀몸노인, 소년소녀가장, 불우이웃 등 100여세대에 전달했으며, 그러한 여러 봉사자들의 손길을 거친 온정이 넘치는 따뜻한 김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도 함께 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 장다리길 상인회에서 나와 봉사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또 인계동에서는 사회복지 수요의 증가로 새로운 봉사 및 나눔 모델의 필요성을 느껴 일상의 삶속에서 나눔을 함께 하는 '사랑 나눔 가게'도 운영하고 있다. '사랑나눔가게'는 관내 기업 및 개인(자영업자)으로부터 물품과 서비스 등을 기부 받아 물품과 서비스 제공을 필요로 하는 홀로 사는 어르신, 재가 장애인 등 지역의 저소득층에 물품과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민간 중심의 자발적인 나눔 실천 업소로 올해 안으로 15개 업소를 지정·운영할 예정이며 앞으로도 매년 계속 추진할 예정이다.특히, 소셜시대에 맞춰 트위터를 통해 적극적으로 동네의 따뜻한 소식을 전파하고 있는 인계동주민센터 총무를 맡고 있는 이용주(@suwoninkyedong)씨는 많은 정보를 알리는 차원에서 사용을 하고 있지만 동네에서 일어나는 훈훈한 정보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 더 지역에서 소중함을 느꼈다며, 앞으로 지역의 알찬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전달할 예정이라고 한다.인계동 주민센터는 앞으로도 김장김치뿐만 아니라, 반찬나누기, 사랑나눔가게 등의 사업을 계속 하면서 윤 할머니와 같은 불우이웃을 위해 온정이 넘치는 따뜻한 나눔을 꾸준히 실천할 계획이다.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윤경자(71) 할머니. 올해 겨울은 어느 해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따듯한 온정이 넘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라이프

테마가 있는 길, 수원‘장다리길’을 가다

인계동의 또 하나의 명물, 수원갈비거리, 맛집거리, 포차의거리, 7080라이브거리, 자동차거리
인계초 옆 장다리길 맛집거리 부근 언제부터인가 하나씩 거리에 음식점들이 들어서더니 장다리길 인근 지역은 수원갈비거리, 맛집거리, 포차의거리, 자동차 튜닝거리를 형성할 정도로 수원갈비전문점들과 음식점들이 무수히 들어서 있다.특히, 이곳은 해마다 늘어나는 있는 수원을 찾는 관광객들은 물론 지역 사람들도 이곳을 자주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거리가 점점 부흥하고 있는 지역 중에 하나며 몇몇 식당들은 사세확장까지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지금은 불경기라고는 하지만 이 거리의 식당들의 풍경을 보면 전혀 불경기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었고 또한 맛있다는 정평이 나있는 식당 안을 들여다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이 거리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러 테마가 있는 총 3km길이의 '장다리길' 이런 거리가 수원에 있다는 걸 수원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또 수원사람들에게 알릴 필요성을 느껴, 거리탐방 시리즈의 그 첫 번째로 '장다리길' 거리 시리즈를 소개하기로 했다. 수원갈비거리 맛집 지도 수원갈비의 명성을 잇는 '장다리길 수원갈비거리' 수원 우시장의 명성을 잇는 수원갈비, 그리고 점차 확산되고 있는 수원갈비전문점들을 하나하나 다 취재할 수는 없지만, 어떤 음식점들이 있는지 자세히 소개해보기로 했다.동수원사거리에서 1번국도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쉬즈메디 산부인과병원 건물이 보이고 우측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바로 장다리길 입구로 들어서게 된다.장다리길로 들어서면 우선 양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이 건물은 바로 수원갈비의 대표급인 가보정 갈비집이다.가보정갈비는 수원갈비의 정통성을 잇는 대표주자 중의 하나로 그 규모는 가히 전국에서도 으뜸으로 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정규직원수만 170명이 넘고 하루 평균 3000명의 손님이 찾을 정도다.이곳은 항상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연말이나 주말이면 인근 주차장에도 차가 가득 들어찰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곳이다.가보정을 지나 국민한우 식당은 가보정 맞은편에 있는 오픈한지 얼마 안 된 식당으로 값이 저렴한 게 특징이며 간혹 갈비탕을 가볍게 먹고 가기에 좋은 곳이다.특히 고래축산과 국민식당이 같이 운영을 하고 있어 정육점에서 바로 고기를 가져다 쓰는 관계로 1테이블당 상차림 최소비용으로 3000원이 적용되며 후식냉면은 공짜로 제공된다.갈비로 유명한 수원의 정통성을 잇는 갈비집은 그 규모가 꽤 큰걸 알 수 있는데 어지간한 건물을 통째로 쓰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명성갈비도 그러하다. 2층 규모의 건물에 넓은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고, 대규모 연회장과 미닫이문이 달린 홀, 아담한 방도 완비되어 있다.특히 이곳의 달달하면서 진한 맛을 내는 불고기가 유명하며 수원갈비의 참 맛 또한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다.장다리길 뒷길로 들어서면 먹쇠네 토종한우집을 비롯해, 최근 인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새벽네 집도 점심시간 사람들로 꽉 들어찰 정도로 꽤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마포본가와 인근엔 돼지양념갈비가 더 맛있다는 명일관도 장다리길에서 만나볼 수 있다.맛집들이 즐비한 '장다리길 맛집거리' 수원갈비거리를 지나면 맛집들이 즐비한 거리가 이어진다. 특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갈비거리와 가까워 수원으로 관광을 온 여행객들이나 수원사람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잘알려진 맛집으로는 백청우칼국수, 어죽이네철렵국, 황태해장국.물메기해장국집, 옥동이네, 도네누 볏짚통삼겹갈비 등이 있다.최근 사세확장을 한 민물매운탕 전문점인 어죽이네 철렵국집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전국구 맛집이며, 값싼 가격과 맛과 서비스로 손님을 끌고 있는 중식음식점인 옥동이네도 꽤 지역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장다리길 뒷길엔 해물 칼국수집으로 유명한 백청우 칼국수집이 있으며 그 옆엔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황태해장국.물메기해장국집도 꽤 유명한 맛집 중의 하나고 인근엔 일식전문점이 기꾸 집을 비롯해 흥부부대찌개보쌈집도 많이 알려진 음식점중의 하나다.조금만 더 걷다보면 도네누 삼겹살집을 비롯해 맞은편엔 코리안숯불닭바베큐 집도 맛집으로 유명하다. 포차의 거리가 있는 장다리길 부근 새로운 명물 '장다리길 포차의거리' 도네누 삼겹살집에서 길을 건너가면 여기서 부터는 포차의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얼마 전부터 생기기 시작한 장다리길 포차의 거리엔 꽤 유명한 포차집들이 있는데 지금은 10여개에 이를 정도로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포차의 거리엔 꽤 유명한 닭발집을 비롯, 춘천닭갈비, 횟집, 포차들이 즐비하게 있으며 맛집으로는 포차벽돌집, 홍합의전설, 빈대떡과찜, 명가포차, 초밥&참치, 호미곶닭발, 먹거리장터 등이 유명하다. 장다리길엔 자동차거리가 형성돼 있다 장다리길 '자동차거리' 장다리길에는 무엇보다 자동차 정비업소를 비롯해 자동차 광택전문점, 자동차 A/S정문점, 자동차 용품 판매점 등이 많으며 장다리길 입구부터 시외버스터미널 사거리 부근 끝까지 총 3km 구간 곳곳에 촘촘히 들어서 있다.또한 장다리길에는 여흥을 즐길 수 있는 7080 라이브 카페도 이 거리엔 꽤 많이 있어 또 다른 거리문화를 형성하고 있다.이렇게 3km 길이의 장다리길에는 수원갈비타운을 방불케 하는 갈비거리가 있는가 하면 맛집들이 즐비한 맛집거리, 포차의거리, 자동차거리, 7080라이브 거리가 있어 지역에서 테마가 있고 이색적인 거리문화를 형성하고 있다.수원에서 이렇게 하나의 길에 다양한 테마가 있는 곳도 드물다, 이런 거리를 콘텐츠로 잘 만들어 제공하고 거리를 특화해 꾸민다면 수원의 또 다른 볼거리를 수원을 찾는 관광객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개인기록물

연말 소원 빌 만한 장소, 어디가 좋을까?

수원 기록물 추억을 담아야 하는 이유는? 수원의 상징성은 절대 무시 못하는 위치에 있다.
연말이면 사람들은 제각각 해돋이를 보러 동해안으로 가거나 인근 산에 올라 소원을 비는 경우가 많다. 또 풍등에 소원을 걸어 날려 보내거나 가까운 곳에 오래된 나무가 있으면 어김없이 소원을 적어 나무에 걸어놓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그렇다면 수원지역에선 소원을 비는 곳은 어느 곳이 있을까?수원에서 소원을 비는 곳을 알아보도록 하자!먼저 나무에 소원을 비는 경우가 있다. 수원지역에는 유명한 고목이 몇 그루 있는데, 그중에 가장 오래된 신목은 화성행궁 안에 있는 수령 600년 이상 되는 신목인 느티나무가 아닐까 싶다. 소원을 적어 날려보내는 풍등 화성행궁 안에는 수령600년 이상되는 소원나무인 신목이 있다 화성행궁 안에 있는 느티나무는 언제부터인가 이 나무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전설이 내려와 지금은 관광객이나 지역사람들로부터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나무 중 하나다.화성행궁의 느티나무는 600년 이상된 노거수로 화성성역 이전부터 수원을 지켜 온 신령스런 나무다. 영목 신목 규목 이라고 불려왔으며 예로부터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목신의 노여움을 사 어려움이 닥친다는 말이 있다. 이 느티나무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 모든 일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나무다.사실, 500년이 넘은 나무는 수원에서 거의 없다시피 하는데 화성행궁 안에 있는 느티나무와 영통 단오어린이공원에 있는 수령 500년 느티나무, 지동에 있는 느티나무가 수원에서는 가장 오래된 나무 중 하나다.지역에서 오래된 나무는 그 나무를 숭배하는 우리민족의 전통사상으로부터 기인하는데 요즘도 마을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매년 제사도 지내며 당산나무로서 숭배도 받는 지위에도 올라있다. 이러한 신령스런 지역의 오래된 나무에서 새해 소원을 빌어보자.우리 민족에겐 예로부터 오래된 나무에는 신비롭고 신령한 힘이 있어 사람들을 또는 마을을 지켜주고 또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준다는 신앙이 내려오는걸 알 수 있다.또한, 화성행궁에서 소원을 적어서 풍등에 걸어놓고 풍등과 함께 날려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 화성행궁에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인다. 화성행궁 광장엔 새해를 맞이하려는 젊은층 사람들과, 가족들이 유난히 많이 오는 장소다. 팔달산 서장대에서 새해 해돋이 보며 소원을 빌어보자 제야의 타종식이 열리는 여민각엔 해마다 수많은 연인들이 찾는 곳이다 마지막 날인 31일 인근에서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함께 밤을 보내고 새해 이른 아침에 팔달산 서장대에 올라 떠오르는 새해를 보며 가슴속에 간직해온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중 하나다.1월 1일 첫 해돋이를 찾는 명소인 팔달산 서장대 부근은 영험함이 있는 팔달산의 정기를 받아 수원시내에서 가장 빨리 떠오르는 태양을 만날 수 있는 해돋이 명소로서 인근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을 정도로 유명하다.또한 날이 밝으면 정조의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인 화령전에서 정조대왕께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고, 수원화성을 지켜주는 성신이 있는 성신사에서 새해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좋다.마지막으로 해가 밝아오는 아침에 인근 광교산이나 칠보산에 올라 새해 떠오르는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곧 2012년도 한 달 남짓 남은 이 시기에 서서히 한해를 마무리하고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 꿈 등을 담아 지역의 소원을 들어주는 명소에서 추억을 쌓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우주이야기

우주 이야기 6편, 지금의 문명 사회를 웃도는 것 중의 하나는?

고도의 인주적인 것과 관측하는 분야까지 고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광년이다. (지구광년) 그 수치가 모래한톨이 1광년으로 지구의 모든 모래들을 합한 광년을 뜻한다. 지금의 우주 과학력은 빛의 거리로 150억 광년에 불과하지만, 과거의 문명적 수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우주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고도의 인주적인 것과 관측하는 분야까지 고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위로는 1지, 2지 광년으로 앞으로 월계우주(범우주 경계밖)에서는 필수적인 우주 측정 단위이다. 두 번째의 단위로는 물 원자 측정기준으로 관측은 지광년 하나를 수소원자 하나의 비율로 보는 것이며, 그 비율대로 바다에 비유하고 있다. 또 거기에 범(한반도) 하나를 올려 놓는 것과 같으며, 그 인왕적 인주를 의미하는 것이다. 지구의 지도는 그러한 것들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반도(범)를 놓고 제주도는 거대한 창조적(제조)인 우주를 말하고 있으며, 제조적인 우주 또한 수없이 많았다는 걸 나타내고 있다. 그 외 지역에도 인류는 무수히 많다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에서 빛은 200억광년이 그 한계점으로 그 이상의 천체물은 빛이 도달하지 못한다고 새겨져 있는 것이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우주이야기

우주 이야기 5편, 우리가 사는 물질(物質) 구조의 변화


우리가 사는 물질 구조는 앞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기본 구조인 원자의 구조에서 새로운 구조로 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기존의 화학염기서열에도 문제가 생긴다.또한 기존의 우주 진출의 방법에서도 큰 변화가 생길 정도로 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항성간 이주에 있어서도 지금의 방식보다 월등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그렇지 못한다면 인류는 지구에서 운명을 같이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지금의 과학문명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범우주 또한 앞으로 안정적인 구조로 변한다.그것은 지금보다 그 거리가 서너 배 크기로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가장 가까운 항성간의 거리가3광년이었다면,앞으로의 거리는6광년에서9광년으로 멀어진다.지금까지는 우주 대붕괴에 역반적인 환경이었으나,지금은 그러한 구조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그러한 이유로 범(範)우주는 안정적이고 순한 우주로 자리 잡아 간다.그것은 인주를 바탕으로 한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원자(atom)>는물질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구성단위로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갖는 최소 단위이다.모든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원자는 기본 구조로서 태양은 물론 모든 행성의 기본적 구조로 이어왔다.여러 원자적 요소가 결합함으로써 철과 같은 또 다른 성질의 원자를 출현시켰으며,지금의 문명도 그에 바탕으로 한 세계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그러나 원자의 구조는 수명의 한계가 있으며 별이나 우주의 탄생과 소멸도 이 작은 원자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 범(範) 물질의 변화는 물에서부터 시작된다.지금의 수도 계량기의 문제들이 불거져 오는 것은 물이 변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물은 현재 기존의 원자구조를 탈피한 구조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우주의 기본구조를 볼 때 이미 과거의 우주는 사멸(대붕괴)의 길을 걸었다. 지금은 월계우주라는 초월적 세계에 들어서 있으며 지구의 환경도 그에 맞춰 대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무엇보다 지금의 보이는 우주는 범(範)우주로서 인주를 바탕으로 한 우주이기 때문이다.그 특성은 그 우주의 주인의 성향에 따라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지금의 과학은 그 해답을 푸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임의로 조정할 수도 없다.그 영역은 불가 사리한 영역으로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 속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분야는 우주로켓 등과 원자폭탄,수소폭탄 등의 대량 살상무기들이며 기존의 의약분야도 해당사항이다. 무엇보다 우주의 현상을 가늠하기 힘든 것은 기존의 탐사 방식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물질구조와 탐사영역을 새로운 환경으로 수정 시 지금보다 더 뚜렷하게 우주환경을 들여다볼 수 있다.이 우주는 범우주로서 인을 바탕으로 한 우주이기 때문에 기존의 상식으로는 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다.범 우주 외곽은 월계우주라는 초월적 공간으로 지금의 지식은 전무한 상태이다. 범 우주는 초월적 존재에 의해 지탱되는 우주에 해당된다.그래서 임의로 모든 물질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다.지금의 모든 환경과 유산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우주이야기

우주 이야기 4편, 우주 탄생은 빅뱅(Big Bang)이 아니다 ②


<세계지도는 과거의 향수로 유사하게 만들었으며, 신의 역사와 우주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함께 앞으로 인류의 운명과 생존길을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손으로 지형을 직접그렸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주를 이해하려면, 과거 속 인류가 살았던 여러 우주환경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지식은 먼지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과거는 여러 우주적 환경 속에서 살았었다. 그만큼 우주는 다양했으며 다채로웠다. 우주들의 1차 붕괴 이전까지는, 그 우주 속 여러 인적인 모습으로 살았었다. 지금도 그들의 영상들을 들어다 보면, 여러 풍토가 남아있다. 영국의 문화를 보면 그들의 과거 우주관이 남아있으며, 유럽의 교황청 문명 역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로봇문화를 이끌었던 문명의 잔재가 남아있다. 여러 인주적 환경은 우주를 이끌었으며,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왔다. 일본 역시 초월적 인주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 또한 여러 외계적 환경과 부딪쳤으며, 여러 영상에서 그들의 현실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이 공개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도 인주적 환경과 문명적 환경의 손들이 남아있다.여기서중요한 건그 역사를 창궐했던 근원적 풍토이다.그 뿌리적 문명을 이끌었던 전설의 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문명 역시 최초의 로봇문명 창시자가 있었으며,인주적 환경과 무림적 검신의 풍토까지 있었다.이는 외계세력으로부터 인을 보호하기 위한 고도의 문명적 풍토였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 우주적 환경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귀곡산장스럽기도 했으며 귀딱스럽고 신풍스럽고도 외딱스러운 그러한 풍토였다. 그 속에서 인류는 그들의 산하로 또는 독립적인 형국으로, 뿔뿔이 갈라져 우주를 배회하고 있었다. 지금의 우주는 수없이 많은 우주 속 생존우주에 해당된다. 유일하게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수없이 많은 경험과 지식으로 이겨나갔기 때문이다. 그것은 최후의 붕괴적 상황과 맞물려 끝없이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의 인류는 태반이 태동적 인류이다.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러한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선대였던 조선(예수~정약용)에서 지금의 지구의 지형을 그렸던 것은, 태초의 고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고향적 향수로 지구의 지형을 유사하게 그렸다. 그것은 문명과 여러 능력이 초월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달의 문양 또한 그들의 작품이다. 지금의 인류는 몰락했거나 또는 태동적 인류로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는데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특정인물을 거론하고 있었던 것은 이 우주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미래에도 매우 중요하게 다가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 지형의 주인공 또한 범(한반도)이라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의 PR로서 여러 전장적 환경까지 역사로 남겨두었다. 지금의 인류가 지구에서 존재하고 있는 이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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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이야기 4편, 우주 탄생은 빅뱅(Big Bang)이 아니다 ①


일반적으로 우주의 신비를 풀 때,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론을 우리는 이론화했다.그중의 하나가 빅뱅인데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해석했기 때문이다.빅뱅이론(Big Bang Theory)은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대 폭발이 일어나 지금의 우주를 탄생시켰다는 가설적 이론이다.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우주탄생의 해답을 우주에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우주의 스케일로 본다면 우주에서의 태동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그러나 그것은 우주 물리학적으로만 바라보았을 뿐이다.고도의 사고력을 가진 인류의 판타지 적인 상황과 초월적 시간과 공간적인 상황을 놓고 보자면,해답은 전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주의 기원은 보다 가까이 있으며 인(신)이 가지고 있다. 그것이 여러 창조신화에서 기록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창조신(인)의 물 한 모금으로 충분히 창조된다. 그것도 대폭발이 아닌 자연스레 그리고 천천히 창조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과거의 여러 창조신화를 조사해 보면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의 우주는 인주를 바탕으로 한 우주이며,시간을 측정할 수 없는 까마득히 오랫동안 유지됐던 초월적 우주에 해당된다.선대 조상들은 그러한 사실들을 산하 곳곳에 새겨놓은 것이다. 과거의 문명적 수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우주적 문제뿐만이 아니라 고도의 인주적인 것과 관측하는 분야까지 고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위로는 1지 광년, 2지 광년으로 이것은 모래한톨이 1광년으로 지구의 모든 모래수를 합한 광년을 뜻한다. 앞으로 월계우주에서는 필수적인 우주 측정 단위이다. 두 번째의 단위로는 물 원자 측정기준으로 관측은 지광년 하나를 수소원자 하나의 비율로 보는 것이며, 그 비율대로 바다에 비유하고 있다. 또 거기에 범(한반도) 하나를 올려 놓는 것과 같으며, 그 인왕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구의 지도는 그러한 것들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한반도(범)를 놓고 제주도는 거대한 창조적(제조)인 우주를 말하고 있으며, 제조적인 우주 또한 수없이 많았다는 걸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외 지역에도 인류는 무수히 많다는 것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주에서 빛은 200억광년이 그 한계점으로 그 이상의 천체물은 빛이 도달하지 못한다고 새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의 문명보다 월등한 사실들이 발견되는 것은 우리보다 월등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알아내는 것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왜냐하면 불가 사리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선대의 흔적은 지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달의 문양 그리고 멀리 있는 명왕성까지 선대는 그러한 흔적을 곳곳에 남겨두었다. 지구의 여러 지형과 유산은 신(神)의 일대기이다 (PR) 우주의 탄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적인 존재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그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해답에 해당된다.그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우주적 공간은 영원히 풀지 못하는 공간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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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했던 인류의 과학문명, 그리고 우주 진출의 한계


목성의 영역에 도달하면 인류는 정상적인 생활을 못한다. 그것은 그 특성이 매우 약하며 정신적인 영역 또한 그 한계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인류는 1차적인 관점으로만 우주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 범(範)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우주의 진출을 모색했다.그리고 최초의 달 착륙과 함께 여러 탐사선을 보내는 등 그간 우주과학 분야는 눈부실 정도로 진보했던 건 사실이다.그러나 아직 인류가 모르는 영역이 많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점이다.일부의 영역은 그에 따른 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우주선을 놓고 보자면 쉬운 문제일 수 있으나,성간이주에 대한 영역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그것은 실어 나를 물자를 비롯해 오랜 시간과도 전장적 환경이기 때문이다.또한 인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그에 따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인류는 목성단위에 외각은 생명을 연장할 수 없는 매우 천박한 환경이라는 점이다.목성의 대기는 가스층으로 지구와 같은 환경이 아니다.모든 물질은 그 특성이 매우 약한 것으로 지구의 물질과 생명은 그곳에서 살아갈 수 없다. 인류의 정신적인 영역 또한 목성단위에서는 그 특성이 매우 약화된다.그래서 정신병을 유발하거나 정신적 돌변현상으로 급사할 수 있다.한마디로 지금의 환경에서는 성간이주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또 한 가지 있다면 진화적 인류만 본다는 사실이다.그러나 인류는 계속 살아왔으며 화성에서 또한 오랜 기간 살았던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그 사실을 지명에 새겼으나 지금의 인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화성은 오랜 기간 인류의 터전 속에 살아온 환경이었으며 행성의 가치로는 그 기능을 상실한 곳과 같다.그래서 지금의 인류가 이주해 살기에는 부적절한 것이다.모든 환경은 지금의 인류로서는 지구가 그 한계점인 것이다. 지금의 인류는 보다 더 거대하고 강력한 외계적 환경 속에 살아야 생존할 수 있다.무시 못 하는 상황은 신적인 존재와 초월적 문명세계가 양립한다는 사실이다.그러한 사실들을 애써 감추었던 것은 지금의 인류의 자율적인 활동에 저해되기 때문이다.그래서 지금의 다양한 문명과 문화가 태동했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큰 문제는 기존 우주에는 무시 못 하는 외계 세력들이 군림했다는 점이다.그 간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키지 않았던 탓에 안전지대에 속해 있었지만,그러하지 않았다면 벌써 외계 세력에 의해 식민지적인 세계가 펼쳐졌을 것이다.외계는 지금의 인류와 같지 않다.영적인 존재든 그러하지 않던 식인적인 세계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강성하지 못한 세계는 이미 몰락했으며 멸망의 길을 걸었다.그러한 상황에 지구의 인류 문명은 원시문명과 같다.그래서 진출은 매우 위험한 것이며,모든 것은 넘사벽적인 상황이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인류는 미약했으며 문명의 결실은 초라하기 때문이다.방어적 환경이 아니라 이 문명 또한 자살적 문명권이라는 점이다.그 뿐 아니라 과거의 여러적 병폐는 지금의 인류로서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로서는 숨겨진 사항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초월적 신이 존재한다는 점과,초월적 문명들이 이미 지구에 도달했다는 점이다.인류의 미래로서는 그들을 무시 못 하는 상황인 것이다.현실에 안주해 있고 이 생이 인류의 전부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영적인 존재로서는 미래의 운명도 달려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그들은 지구의 인류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역사에 윗선에 있던 세계로 모든 상황은 그들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자칫 그 선에 어긋나는 상황으로 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처벌적 상황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우리가 존재하듯 상위세계는 까마득한 시간의 건너편부터 존재했었던 것이다.그 선을 지금의 인류는 넘지 못한 탓에 그들을 쉽게 접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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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3편, 태양은 소멸의 길을 걷는다 ①


항성의 오래된 물질은 하얀색을 띤다.태양도 오래된 항성으로 축소기를 거치고 있다.태양은 멀지 않은 미래 소멸하며,지구는월계(인주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 우주)라는 우주적 행성으로 도달하게 된다. (*기존 우주의 붕괴와 사멸)그 시점에 맞물려 인류는 지구를 떠나 월계로 이주를 강행해야 한다.지금의 지구가 소빙하기를 맞는 것은 태양의 축소와도 관련이 있다.하얀 물질을 내뿜으며 태양은 소멸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태양의 초장기는 붉은색을 머금었지만 수십억 년이 지난 지금은 곧 소멸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예시하고 있다.젊음의 물질은 푸른색을 띤다.그러나 오래된 물질은 하얀색으로 모든 특성을 잃어버린 불같은 형상이다.물질의 잔상은 물질의 모든 특성을 잃어버린 것에 해당된다.우리의 문명은 이것을 표현하는 단어가 제한적으로 마땅한 단어가 전무한 상태이다.태양은 우리의 생각보다 오래되었으며,그 기간이100억년(*과학계는50억년 정도로 보고 있다)에 가깝다.그것은 항성으로서 소멸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우리가 태양을 같은 크기로 가늠하는 것은 그 잔상의 물질 또한 태양의 그 특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증상을 그 하얀 잔상이 머금고 있는 것이다. 소멸기에 접어든 태양에 의해 지구는 가뭄이 잦아들고 있으며,공작물 또한 영글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인류는 미래를 대비해 식량자원을 확보해야 한다.식량문제는 거스를 수 없는 인류의 문제로 붉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태양계의 환경은 우주의 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었다.지금의 항성의 크기와 주기가 없었다면 지구에도 불가피하게 큰 피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우주적 환경과 은하계뿐만이 아니라태양계 또한 지구를 방호하기 위한 최적의 환경이었다.그것은1차 붕괴와 우주의 대 붕괴적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방호적 우주였던 것이다.지금의 태양은 고도로 계산하에 선대로부터 최적의 환경을 부여받아온 것이다. 지구와 우주의 신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앞으로 무수히 많은 신비스런 이야기가 남아있다.지금의 인류는 그러한 사실들을 받아들이기에는 힘들 지도 모른다.왜냐하면 기본 물리학으로 배운 지식이 고착화가 되었기 때문이다.모든 것들의 지식은 앞으로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태양의 사멸 그리고 '광빛(橫光;동음) 에너지' 지금의 태양은<차원우주수학>으로 이뤄진 열과 빛의 집합체이다.그래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전자기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태양은 가볍고 열기를 머금는다.그래서 차원우주의 초월적 추위를 막을 수 있었다. 지구는 서서히 어두워지며 태양의 빛과 열이 삭으라 든다.곧한계점에 도달한다.적응해 갈 수 있지만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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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2편, '안드로메다 은하'


많은 별들이 모인 집단을 우리는 갤럭시 또는 은하라 부른다. 갤럭시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인 ‘갈락시아스’에서 유래됐다. 은하가 차지하는 영역은 매우 크며, 보통 직경 수십만 광년 거리로 이는 빛의 속도로 간다면 수십만 년 걸리는 크기이다. 은하계 속에는 항성계, 성단, 성간운들이 모두 존재하며 중심부는 거대한 항성들의 집합체로 그 중심에 블랙홀이 존재하는 구조이다. 우주엔 수없이 많은 은하계들이 있는데 안드로메다도 그중의 하나다.특히 은하계 중에서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건 우리 은하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그중의 하나가 바로 은하계와의 충돌이다.앞으로 수십억 년 후 두 은하는 충돌한다.두 은하의 충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의 하나로 손꼽는다.또한 은하계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안드로메다는 가장 대표적인 은하라 할 수 있다. 두 은하의 충돌의 영향은 우리에게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천문학자들은 항성 간의 거리가 멀 기 때문에 성간 충돌은 거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먼 미래적 이야기로 우리와 직접 관계가 없다. 다만, 먼 미래의 우리의 자손들은 두 은하의 충돌을 직접 경험할 것이다. 경이로운 우주적 천문현상인 두 은하의 충돌은 정보를 다루는 모든 매체에 오내릴 것이 자명하다. 미래의 소식을 인용하자면 "두 거대 세계의 만남, 안드로메다의 드디어 입성", "과거 안드로메다는 우리 선대 조상들의 꿈같은 천체로 지금도 남아있다"라고... 거대한 안드로메다 은하는 1조 개의 별로 이뤄져 있으며 지름이 22만 광년, 태양질량의 1조 2천억 배 크기에 이른다. 은하계는 보통 소용돌이 문양을 띄는데 이는 중심부에는 거대한 항성들뿐만 아니라 블랙홀 같은 거대 천체물의 영향아래 있기 때문이다. 은하계는 보통 정도의 크기에는 대부분 유사하다. 작은 은하계도 존재하며 더 큰 은하는 우리 은하의 몇십 배 정도로 거대하다. 우리 은하계가 속한 국부 은하군에는 50여 개 이상의 은하가 존재한다. 그중 가장 거대한 은하는 역시 안드로메다 은하이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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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1편, 멀티버스(Multiverse)


우주는 우리가 아는 지식으로는 그 모두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하다.우리가 만약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선을 타고 떠난다면,가장 작은 규모의 우주라도 벗어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벗어나는 데만 빛의 속도로 수백억 년 이상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우주역사에 버금가는 일로 현실적으로도 순간이동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한 우주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도 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빛의 잔해로 우주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그것은 언제까지나 오랜 빛의 사유물로 그것에 의한 가설에 불과하다.알다시피 빅뱅에 의해 탄생한 우주는 수없이 많은 은하 필라멘트 구조로 이뤄진 공간으로 지금의 크기는100억 광년이 넘는 크기이다.빅뱅 이론 또한 지금적 우주 물리학 이론에 힘입어 표준으로 굳혀졌지만 이것 역시 증명되지 않았다.오래전 우주는 빅뱅에 의해 탄생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멀어지고 있다는 이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주이론 중 빅뱅은 표준이론으로 굳혀졌을 뿐이다. 태양계에는 태양이 있듯이 우주의 중심부에는 그것을 지탱하는 거대한 천체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특히 우리를 존재케 한 우주 공간 중심에는 이를 지탱하는 힘이 존재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우주를 이루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우주는 보다 많으며,수없이 많은 우주로 이뤄진 다중 우주론이 힘을 받는 이유이다.그것은 시간의 역사로 돌이켜 보면 우주는 흐르고 있으며 생각보다는 작은 규모(20~30억 광년)로 멀고도 먼 과거의 은하계들은 사멸의 길을 걸었거나 또는 다른 우주 공간의 소속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멀티버스(다중우주론)는 우리가 사는 우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우주까지 존재한다는 가설적 이론이다. 수없이 많은 천문학자들이 우주 경계 밖을 탐사하고 밝히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다른 우주의 발견이다. 그중 하나가 우주 속 빈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무려 99.999%가 비어 있는 빈 공간적 우주이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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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전설 속 말로 표현 못하는 자가 있었다"


인류의 길에서 그를 뺀다면 역사를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우리도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는 그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경험을 했으며, 유지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우주는 평범하지 않았다. 매서웠으며 무서웠다. 새겨진 것 중의 하나하나는 그의 생활을 적어놓은 것이다. 또한 그가 좋아하는 음식부터 문화까지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도 새겨놓았다. 지금에 있어서 인류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인류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는 구원자로 온 것으로 보면 안 된다. 그는 처음부터 안내자였다. 우리의 역사적 문화인 궁도 그의 생활을 기반을 지었던 것이다. 한반도에 지명과 풍습등 여러가지는 범과 관련돼서 주의할 것과 지원해야 할 사항들을 새겨놓은 것이다. 또한 지금적 인류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과 지식을 새겨놓았다. 다만, 그 의 눈에서 풀어야 할 것으로 어지간한 천재가 아닌 이상 푸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학문의 깊이와 자연의 위치를 알아야지만 보이는 것으로 지금적 지식인들을 총 동원해도 풀어내기는 역부족이다. 과거 영원에 가까울 정도로 조선의 역사가 있었으며, 오랫동안 쌓은 지식적 기반을 새겨놓았다. 지금의 인류가 배워야 할 매우 중대한 지식들이다. 앞으로 그 지식을 토대로 다양한 문명속에 살아야 하며, 인과의 법칙 아래 인류가 걷는 길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수북이 쌓아 올렸다. 그 지식들은 앞으로 영원에 가까울 정도로 유지해야 하며 배워나가야 한다. 그러하지 못하면 인류는 매우 어려운 길을 걸을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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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는 조상 신이 태어나는 그 시대 꼭 치르라고 말했던 것이다


선대의 무언의 메시지들은 무수히 많다. 그중의 하나는 그 손이 태어나는 그 시대 꼭 축제로서 그것을 알리라고 전했던 것이다. 그 손은 형용할 수 없는 선대 조상으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시공의 건너편에서 온 자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에서는 전설 중의 전설로만 남겨진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그 전설 중의 하나는 칼로 머리통을 꽂아 전장으로 향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옛적엔 영속적인 것이 가능한 시대였다. 또 하나는 그를 상징하는 호칭이다. '근원의 하늘'은 그 손 외는 절대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 호칭 또한 넘사벽적인 것으로 지금의 후대 인류에게는 낯설을 뿐이다. 그 손과 동시대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나 그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것도 남겼다. 태초엔 그 손 외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은 무에 해당되는 시기가 있었다. 그에게는 시간을 놓고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따른다. 우주 만물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도 그에게는 원자의 묻은 거리밖에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무수히 길며 지금의 인류는 그러한 역사의 막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류는 앞으로 이 위기에서 현명하게 걸어갈 것을 요구했다. 우리의 힘은 그러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선대 인류는 여러 세력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그 작은 하나도 해결을 하지 못한다면, 공생해 봤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인류는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한 인류에 해당된다. 앞으로 배울 것은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다. 여러 가지 진일보하지 않으면 그 시대 생존해 갈 수 없다. 그의 말처럼 파별 세력을 일궈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한일생 살다가는 어처구니없는 인류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구의 인류는 수없이 많은 종으로 이뤄진 세계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모를 뿐이다. 인류로서는 그러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의 문제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에 있어 여러 문제가 불거져 오는 것은 과거 인류와의 여러 마찰적 문제이다. 그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칫 우주의 전 인류세력으로부터 외면받을 뿐만이 아니라 적대시될 수도 있다. 이것은 앞으로 지구에 있어서도 바르지 못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지구의 인류는 호모사피엔스적 인류이기도 하지만 여러 우주적 특성을 지닌 다수 종으로 앞으로 인류는 하나의 종으로 보기 힘들어진다. 뿌리적 성향의 인류로 걷기 때문이다. 인류는 한 모습으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미래는 다수의 외계적 모습을 변화할 수 있다. 그것은 지구적 환경에서는 그 한계가 있으며 특히 월계우주의 특성을 타고 갈 것이 분명하게 비춰진다. 범 세력 또한 같은 동양인으로 볼 수 있으나 전혀 다른 종이다. 사고방식 또한 다르며 인적인 구성 또한 다르다. 범세력은 다양하며 백인계 또한 무수히 많다. 하나의 종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생명집단은 아니다. 파는 그러한 구성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 태동인류는 그렇나 경험이 부족할 뿐만이 아니라, 파 구성에 있어서도 기초적인 지식 또한 전무하다. 이 시대 갖춰가지 않는다면 멸종당할 수 있다. 인류의 길에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전통의 방식 또한 배워야 한다. 그러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는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하게 된다. 현대에 있어서 돌연사 문제가 심각해지는 이유는 여러 종의 교배로서 혼혈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혼혈은 강하지 못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부적응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앞으로 자손대로 흐를수록 그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과거의 여러 전통의적 문화를 들여다보면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다룬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앞으로 태동인류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는 사항들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하지 않는다면 고립되고 고정적인 사고방식은 정신적 발달에 있어 인류의 미래 어두운 양상으로 흐르게 될 것임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현대 인류는 그러한 것을 잊고 살아가는 탓에 앞으로 문명이 발달할수록 심각해질 수 있으며 멸망과 몰락까지 올 수 있다고 선대는 바라본 것이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역사스페셜

영화 십계(The Ten Commandments)의 주인공들은 남부 한반도인들이다


한 때 인류가 번영기를 누렸을 시 지금의 아프리카는 그렇게 낙후된 지역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 영국령이었던 아프리카 대륙은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았었다. 피라미드 양식은 아시아 권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왕조는 영국령으로 아프리카 전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다. 종교 또한 다양했지만 대표적인 종교는 유대교가 있었다. 그 국민들의 일부는 유대교를 신봉했던 것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유대교의 대표적인 풍습은 가축의 피를 문에 뿌리는 것이 있었다. 민족의 구성 또한 지금과 같이 흑인들이 사는 세상은 아니었다. 백인계가 많았으며, 혼혈적인 민족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처럼 아프리카인들이 흑인이 된 이유는 뿌리적 인종들이 다수 십계의 장면처럼 민족이동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 민족들이 돌고 돌아 지금의 한반도 남부지역에 거주하게 된 것이다. 그 숫자가 지금은 여성 100만에 남성 900만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인들은 다수 혼혈적 특징을 갖는다. 우리가 생각할 때 호모 사피엔스적 인류로 같은 종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다른 종으로 그 숫자만 수억 종에 이른다. 인류학적으로 되새겨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역사스페셜

20만 년의 가락(駕洛) 문명, 지구에서 처음은 아니다


지금의 인류가 진화적 진보를 이루며 인류로 바로 설 수 있었던 것은 선대 조상격인 가락 문명의 영향이 가장 컸다.그들은 그 오랫동안 인적인 길을 걸으며 오늘의 신체와 정신을 가다듬었던 것이다.그 기간은 쉽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무엇보다 취약적 환경에 노출되었으며,다양한 병에도 자유롭지 못했다.과거의 문명을 애써 감추었던 것은 무엇보다 진화적 진보에 저해되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그들은 고유한 치유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지식을 집대성해 나갔다. 지구에 문명권을 지닌 세력이 들어온 건 지구의 역사로 보자면,까마득히 오래전 일이다.태양 활동의 축소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지구로의 이주를 강행했기 때문이다.이는 어디까지나 앞으로 만날 인류를 위해 대비하기 위함이 가장 컸다.무엇보다 현재의 인류는 다양한 외계적 환경 속에서 영속적인 경험이 있는 관계로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영역이 매우 중요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종교는 그러한 신체와 정신적인 것을 물려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인류는 매우 험난한 시대를 맞이했을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특히,그들의 오랜 영속적 역사에는 무시 못 하는 사실들이 숨겨져 있었으며,차마 말로 할 수 없는 무한의 시대에 빠져든 존재도 있었다.그뿐 아니라 여러 식인적 외계세계에 잡혀 있었으며 그러한 손들을 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바라보았다.순간이동과 차원도약적 능력은 시공을 초월한 여러 세계를 돌아다녔으며 그 속에 얽매여 있는 인류의 손들을 구했던 것이다.그래서 지금의 인류가 다양한 문화 속에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범세계와는 차별된 고유의 세계로서 무수히 많은 월계라는 세계의 하나하나라는 점이다.윗 상의 세계는 초월적 세계이며 신적인 세계이다.그래서 지금의 인류는 그러한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하며,그들의 반하는 행위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그 세계 또한 그러한 죄에 대해서 단오하며 심지어 지옥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가락문명이 있기 전 까마득히 오래전 이미 지구에 터전을 마련했으며 현대적인 문명권속에 살았었다.여러 관계가 보이는 것은 오랫동안 지구에서의 삶을 영유했기 때문이다.과거의 경험적 인류로 본다면 다양하게 환생하며 살았으며 지금보다 수명 또한 지금보다 길었다.세력들 간의 왕래도 있었으며 외계 세계와도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뤘었다.지금도 여러 외계세력과 전쟁을 했듯이 과거 또한 유사했다. 이전 시대 대표적인 외계 전쟁을 꼽으라면 '지존원로회'가 대표적이었으며, 노예적 인류도 상당수 존재했었다. 그 속에 인류가 살았던 것이다. 근 몇 년간 인류는 상상할 수 없는 거리를 여행했으며 다양한 외계 세계를 다녔었다. 지금의 인류는 경험이 부족한 탓에 그러한 것들을 가늠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끝나지는 않았다. 새로운 세계인 월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역사스페셜

20만 년의 가락문명 속, 과거 논대(論大)가 있었다

지워진 이야기
<사진=경기일보 참조> 한반도에서의 문명은 처음이 아니다. 고도의 문명은 두 번 정도 지나갔다. 그 첫 번째가 조선(예수~정약용)으로 여러 우주를 돌아다닌 초월적 세력이었으며 두 번째로는20만 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가락문명이었다.가락문명은 8만 년 전에 중앙집권식 왕권을 성립했으며 나라를 운영했다.지구의 역사로 본다면 가락문명은 그 시기가 매우 빨랐다. 다른 곳은 원시적 모습으로 살던 시대 그들은 그들만의 독자적으로 문명을 일궈 나갔다. 한반도에서 그러한 모습들이 투영되는 일이 있는 건 그 시간적 잔상을 물질이 머금었기 때문이다. 두 문명의 고향적 토양은 지구였다. 그들은 교육적 방식 또한 지금과는 달랐다. 전통을 중요시 했으며 근대식 교육을 고집했다. 당시에는 지금의 서울대농대 부지엔 논대가 있었다. 논대는 대학원 이상의 수준으로 여러 학문별 박사 이상의 급수였다. 지금과는 유사한 듯 다르다. 특정지역은 미래를 위한 대안도시를 운영했다. 수원지역은 당시 특수지역이었다. 외계적인 분야의 전문적인 손들을 길러내는 곳이기도 했다. 우주 진출에 성공한 가락문명은 이러한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한 우주 진출의 전진기지로서 남극을 할애할 줄 알았다. 그들은 한반도의 국력만으로 우주 이주까지 달성했던 것이다. 성공한 이유는 그들의 독특한 교육체계에 있었다. 그들은 손도 관리함으로써 그 손의 학문적 깊이 또한 가늠할 수 있게 했다. 그러한 이유가 작으면서도 고도의 문명을 달성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의 인류는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수만년에 걸쳐 우주 진출에 성공했다. 지구의 토박이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논대는 여러 학문적 고찰을 논하는 곳으로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소유한 자만 다닐 수 있었다. 또한 여러 학문을 전진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논장각하 집무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논장각하는 지금의 국회와 대통령, 교수, 법관으로서 여러 가지 일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지금의 수원화성은 동시대 살았던 조선과 가락문명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한 건축물에 속한다. 그것은 그 건축물이 가지는 여러 상징적인 의미와 컨셉 그리고 앞으로 인류의 손으로서 지향하는 여러 학문적 지식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은 토목공사가 아니다. 스케일이 거대한 예술적 건축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집중취재

피라미드의 전통과 신(神)의 손(王)

지구의 피라미드는 1억 년 동안 이어온 전통양식이다.
지구에서는 정체불명의 여러 유적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피라미드다.스케일 또한 거대하며 이는 지역의 상징성을 부여하는데도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그래서 여러 역사서는 뿌리로 보거나 또는 권력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는 실정이다.다만,다수의 피라미드는 아직 발견되지 못했거나 시간의 흐름 속에 그 흔적이 사라지기도 했다.그 역사 또한 유구하며 수없이 많은 피라미드가 건설되기도 했다.그러나 인류가 아는 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피라미드는 신과 인연을 맺은 여손의 부친과 관계가 있으며,그 지역에 묘장 되는 풍습이 있었다.인류의 역사를 반만년 또는 길게는1만년이라 보고 있지만 실은 그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시간이었으며 지구에서만 해도 거의1억년에 달한다는 사실이다.인류는 이러한 사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환생 인류로 본다면 인연의 손들은 지금도 수없이 많다.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유지했으며 이어왔다.다만,여러 외계적 인류가 그 틈바구니에 있었으며 이 시대는 그러한 특수적 상황의 손들이 대부분이다.그래서 지구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여러 문명에 있어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지금의 인류로서 해석의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문자뿐만이 아니라 유산에 있어서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지녔기 때문이다.이집트 피라미드 또한 가장 최근의 일이며 그러한 이유로 보존상태가 양호했던 것이다. 신의 성지인 한반도는 무엇보다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그 이유는 부활과 태동 인류를 맞이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여러 손들을 관리하는 일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다.지금과는 다른 체계와 구조였으며 그 일에 있어 지구에서만 국한되지는 않았다.그래서 유사한 모습들이 비춰졌던 것이다.그러한 사실들을 모르는 것은 이곳의 역사와 상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굳이 알 필요가 없었으며 알릴필요도 없었던 것이다.그것은 무엇보다 진보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역사에 있어 현대 인류와 그 선을 그었던 것이다.이는 그들에 있어 풀어야 할 것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그들의 세계로 본다면 두 세계의 공존은 양립할 수 없으며 다시금 고향 세계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위치였다.다만,반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른 외계에 근원을 둔 손들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위치로서 지금의 손들은 대부분 버려졌거나 씻을 수 없는 손들이 대부분이다.그러한 이유를 아는 것은 영혼은 영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그래서 고향적 세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러하지 않으면 지금의 모습 또한 유지할 수 없다.앞으로 지구는 벗어나야 할 환경이며 그들에 의해 이주할 무대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여러 상황은 인류에 있어 나설 수 없는 상황이며 그곳의 가장 폐기된 행성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그러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그 세계 또한 여러 인류가 공존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그들의 고유한 세계를 일구고 있다.다만,지구의 인류는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가장 마지막 일은 그러한 인류를 돌려보내는 것이고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었다.그러나 여러 규칙을 위반함으로서 상황은 악화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재로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에 처해있으며 범이 제시한 길 외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범이 필자로 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시일 : 2025-09-28, 글쓴이 : 김홍범 기자

공지사항 / NOTICE

홈페이지는 보조 서버PC로 운영하다 이주에는 안정적인 주 컴퓨터를 가져가셔도 됩니다 - 백업 활성화

전장시대, 앞으로 인류는 체계적인 개인 기록을 해야 한다. 남녀 기자과정 2년 의무. 경계 근무도 기자를 세울 수 있다.
그 이유는 전장시대 개인 기록으로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업을 잘 하신다면 가동하는 주 PC에 백업하실 수 있습니다. DB는 phpmyadmin 사용 등 . 파일은 그대로 카피하시고 펴미션만 조정하시면 됩니다. 윈도우 11에서 우분투 이용법 참조 이주후에는 넷과 PC가 무상으로 보급되니 가져다 쓰시면 됩니다. 게시일 : 2025-09-27,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짤막소식

이주후 개인의 역량이 강화된다면 개인 서버실도 운영될 수 있다. 넷과 장비는 무상으로 지원된다.

1인 LIFE, 개인 기록과 함께 서버 운영 또한 필수적! - 개인 기록용
사진참조 : 네이버 데이터센터 주거용 이주선, 경량식 모듈러 주택, 식량과 물자 또한 무상으로 지원된다. 넷 연결망이 연결될 수 있다. 통신은 넷으로만 가능하다. 개인의 취향적 공간으로 조성될 수 있다. 기록(기자활동)과 함께 서버 운영또한 필수적으로 익혀야 한다. 미래는 개인의 생활이 주를 이룬다. 네이버 데이터센터식은 개인 기록용이다. 그 또한 시서물과 함께 지원된다. 이곳은 상상초월 문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범 기자 2년(남,녀) 과정을 의무로 두는 이유는? 기자를 경계근무에 세울 수 있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사진=중앙일보 참조 게시일 : 2025-09-27,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포스터

2025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만천명월(萬川明月) : 시즌 5 「새빛향연 饗宴」 기간 : 9. 27.(토) ~ 10. 12.(일) - 장안문 일대
만천명월(萬川明月) : 시즌 5 「새빛향연 饗宴」 기간 : 9. 27.(토) ~ 10. 12.(일) 장소 : 화서문, 장안문, 장안공원 개막식은 화서문에서 사전공연(19:30), 개막식(20:00)이 진행 게시일 : 2025-09-27,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짤막소식

그 외 2번째 뿌리시대는 외계까지 호령했다는 것을 알린 것이며, 그것이 판타지의 뿌리이다 - 행차의 의미

그 외 여러가지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그것이 지저스 시대부터 월계, 물고을, 창세기, 판타지까지 인류의 역사이다. 경우의 수와 여기 일부는 외간에 가깝다.
영상 : 수원화성문화제 정조대왕 행차 공동재현 - 초기화면 수원시청 제공, 영상 김홍범 기자 월계와도 왕래가 있었다. 옛 조선의 풍토와 유사한 것은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뿌리시대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그들은 그 시대를 모른다. 그래서 경계하는 것이다. 다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은 조상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시일 : 2025-09-27, 글쓴이 : 김홍범 기자

스터디 / MYSQL

Mysql Workbench로 import/ export 하기

개인 기록용 개인 홈페이지 DB 관리
Mysql Workbench로 import/ export 하기 개인서버 운영경우 용량 문제로 phpmyadmin에서 관리 못하는 경우에 요긴하게 쓰입니다. 사이트에서 다운받기 https://www.mysql.com/products/workbench/ 게시일 : 2025-09-27,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특별보고서

정체불명의 여러 자료들은 초고도 문명의 산실이다

시간의 늪에 빠진 행성 먼 훗날 그들이 도착한 곳은 과거 지구 그대로였다.
앞 서 말했듯이 인류는 과거에도 살아왔다.먼 우주에서 온 세력이 있는가 하면,지구에서 번영을 누린 세력도 존재한다.지구의 남아있는 고대 유산들은 원시 부족사회가 집대성한 것이다.그것이 종교부터 철학,건축과 농업분야까지이다.그것이 수원화성이 축성된 시대까지이다.그 모든 것들이 원시 부족사회 그들이 일궜다.특별한 것은 특별한 손들을 챙겼다는 점이다.그것이 신라로 알고 있는 토양과 조선의 토양이다. 그 외 고도의 자료는 실존했던 역사의 흔적으로 초고도의 문명을 달성한 증거물이었다.그것은 역시 과거의 여러 전장과 문명의 산실 속에 살아온 인류였기 때문이다.모두 외계에 기반을 둔 인류이다.시간의 건너편과 검으스름하게 녹슨 도로길 앞,그리고 경우의 수까지이다.대부분 인류는 외계세력 산하 속에 살았다.운이 좋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식민지적인 생활이 주를 이뤘다. <범 문명의 영화제작 수준은 여러 우주를 넘나드는 레벨이며 행성까지 구축하는 수준이다. - 스타워즈> 지구의 역사를 본다면 대표적으로 범 문명도 있지만,가락문명도 그 하나이다.지금의 조선의 양식은 그 뿌리적 풍토가 가락이기 때문이다.가락은 허준에서 나온 그 풍토였다.그것은 오랫동안 다져진 인간으로서 진보했으며 우주 진출에 성공했다.그 문명은 한반도만으로 그 업적을 이룬 것이다.여러 정체불명의 자료는 그들의 자료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8만 년의 시간은 절대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초월한 문명도 존재했다.그것이 범 문명이다.그 문명은 이미 상상초월의 경지에 도달했으며,여러 우주를 넘나드는 수준까지 진보했다.여러 영화는 실제 모습으로 제작되는 수준이었으며,행성의 구조 또한 여러 도시가 건설될 정도였다.그 스케일은 여러 우주를 넘나드는 수준이었다.영화 속의 여러 기갑 장비 또한 직접 제작한 것들로 응용됐다.모든 것은 그 척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무엇보다 지금의 척도에 벗어나지 않게 제작됐다.인류의 지능을 고려했던 것이다. <여러 영화는 지구와 인류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 대다수이다. - 혹성탈출> 무엇보다 인류에 있어 심각한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지구는 매우 위험한 시간의 늪에 빠진 곳이었기 때문이다.그 속에서 진일보 했던 것이며,초월의 문명을 달성했던 것이다.여기서 남긴 그 자료들이 소실된 이유는 계획적 범죄에 기반을 둔다.그들의 사고방식은 남겼던 여러 자료들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그 이유로 그들은 오랜 기간 시간의 차이를 가져왔다.그러나 그들이 다시 만난 곳은 먼 훗날의 과거 지구였다. 한 마디로 혹성탈출 이었다.그들은 시간의 늪에 빠진 지구로 귀향했던 것이다.그러나 여기의 시간은 짧은 그 한순간 이었다.그 이유로 이곳의 과거 풍토가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왜냐하면 지구는 절대적인 시간의 늪에 빠진 행성이었기 때문이다.그들이 돌아온 건 외계행성으로 사냥의 대상과 그들의 욕심이 가져온 그 결과물을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건 그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들은 괴물이 돼서 돌아왔기 때문이며,식인세력이었다.그것이 그들의 자화상이다. 무엇보다그들의 오류는 지구의 인류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또한 여러 자료들은 이곳의 척도를 대변하지 못한다. 그것은 영화 제작 수준도 여러 우주를 넘나드는 레벨이기 때문이다. 게시일 : 2025-09-27,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특별보고서

미끼를 문 그들의 정체와 앞으로의 운명은?

그들은 원시 부족사회가 일군것을 비추며 그들의 우수성을 자랑했다.
모든 것은 미끼였다.여러 유산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들의 사냥을 알기 위한 술수였다.그 하나에 그들은 매여 있었던 것이다.그들의 사냥의 수법을 알 수 있었다.그들은 새로운 인류세력에 초점을 잡고 있었다.사냥이었다.미끼를 문 것이다.장식은 물론 그들의 목적을 알 수 있는 여러 지표가 남겨졌다.원시부족사회가 일군 것을 철저하게 이용해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백제금동대향료가 그 하나이다.그 의미를 지금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은‘금 닭의 새대가리로는 절대적으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일종의 메시지였기 때문이다.그것 또한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그 모든 것은 그들을 잡기 위한 함정이었기 때문이다. 지구는 특수한 곳으로 그들은 그 무엇도 알지 못했다.그들의 수준은 우주에 내 놓을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들은 전설을 낳았다.수없이 많은 인류가 그들에 의해 당했기 때문이다.식인세력이었다.지금의 한국인들의 태반은 그것을 막지 못한 원한 적 관계이다.그들 또한 그것에 동승하고 있으며,그들의 사기에 놀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모든 것은 그들의 공갈협박으로 시작됐다.그것이 이 짧은 그들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상징성을 부여하는 일월오봉도, 그들을 설명할 수 있는 그림만 살아남았다. 그들은 그 땅에서 증거인멸을 자행했기 때문이다.>었 그들은 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주선과 여러 요소로서 그들을 속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으로 상상초월하지 않았다. 우주에서는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수준이었가 때문이다. 절대 고기 수준이었다. 스타워즈가 그 척도이다. 그들은 과거의 풍토를 내세우며, 그들이 우수하다는 것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사냥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범 문명의 여러 우주를 넘나드는 영화 제작 수준에 불과했다. 모든것은 흘린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들은 철저하게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정하고 있는 이유 또한 그 모든것을 이용하기 위한 장식쯤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그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인류는 이미 그들에 의해 사냥당한 인류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류만 살아남았다. 그들의 그곳은 사냥당한 인류가 네모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시온땅이자 에덴동산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냥의 주요한 표적은 세종의 세력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자행으로 그 미끼를 물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세종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언제적 인물인지도 모르며, 사냥감 몰색에만 주력했다. 그러나 미끼를 문 세력은절대적인 전 우주에 탑 세력이기 때문이다.범 또한 무시 못하는 절대자의 위치에 있으며지능 또한 그 산출값이 끝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그 또한 그들은 부정하기 시작했다.그것이 그들의 자화상이다. 일개 겁쟁이들로 그들은 스스로 그 모든것을 증명하며 지금까지 자행한 그 수법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원시 부족사회가 일군 것을 그들의 역사인 마냥 사기 쳤다.왜냐하면 그것은 원시부족사회가 순수하게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이 한 것은 그것을 이용해 먹는 부류였다.그리고 사냥한 손들을 이용하며 철저하고 은밀하게 그들의 계획을 진행했던 것이다.인류는 그 속에 포함되지 않았다.그들의 눈에는 이미 그들의 손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만 주어진다면,인류는 인형 수준이었다.그것이 이 판세이다.다행인 것과 불행인 것은 범은 절대 구원세력이라는 점이다.그 영향 또한 지대하기 때문이다.그들이 그것을 막는다면 죄를 씻는 것과 동시에 보상받을 수 있지만 굽히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으며 처참한 결과를 맞이할 거라는 범의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마지막 일로서 그 시간의 역사와 일의 척도를 밝혔던 것이다.특수 상황은 고려할 수 있지만.지금까지와 앞으로 진행되는 사항은 절대로 공생할 수 없는 위치도 상주한다는 것을 분명이 인지해야 한다. 지금도 한국에 대해서 사정없이 타격을 주는 것은 앞으로 그 길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그 이유로 일부 손들이 여러 사실에 대해서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이다.인적인 길에서 무지는 결코 유토피아로 흐르지 않는다.공상만 떠는 식인세계가 되기 때문이다.그 증거인들로 하여금 그것을 하루속히 인지하길 바랄뿐이다.지금까지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숙지하지 못했다면,그리고 범이 말한 것에 대해서 아직도 속이려 한다면,그들은 결코 바로설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미래는초월을 넘는 상상초월의 문명과 존재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인류를 넘어 지금의 한국인들이 그 대상인 것이다.그들의 그것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음을 인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그 무엇도 하지 못하고 지구가 요동칠 정도로 떨고 있었다.그것 또한 범은 막고 있는 것이다. 게시일 : 2025-09-27, 글쓴이 : 김홍범 기자

뉴스 / 특별보고서

노인 Z, 맞지 않는 경우의 수와 확률의 세계

현실과 같은 가상현실세계 그것이 지구라는 세계이다. 해괴한 세계 인류의 미래는?
지구의 인류에 있어 지금까지 경험한 사실들은 기상천외한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그것은 시간의 늪과 인류를 사냥한 식인세력과의 교차점에 있었기 때문이다.다양한 영역은 그들로부터 갈라설 수 있었던 배경은,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성향과 정신적 수준이었다.그들로부터 상당수 물질을 얻을 수 있었지만,그들의 정신은 자세는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에 공생할 수 없었다.지금까지 말한 여러 세계로 명확하게 시간차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본다면 크게 시간차가 벌어진 시대는10여개를 넘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그들의 환경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지만,성향은 두 가지로 나눠지기 때문이다.그것은 앞 서 말했듯이 인류를 사냥한 세력과 당한 원한 적 세력이라는 점이다.그것도 식인세력에 기반을 둔다.세력중의 일부는 기상천외한 세계에서 살아온 경험과 오랫동안 검으스름하게 걸은 인류권에 해당된다. 무엇보다 피해를 당한 대다수는 여성세계이다.그들은 미래 그들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 갈 것으로 점쳐진다.그러나 그 일을 주도하는 세력과는 그 차이를 좁힐 수 없을 것으로 점쳐진다.왜냐하면 지금까지 걸어온 상황은 무시할 수 없는 일들이 수없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우주환경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앞으로의 지식적 전수이다.그 이유로 넷과 통신 그리고 방송채널이 필요하다.뿐만 아니라,초월 존재와 여손들과의 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지구의 환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태양은 사멸의 길을 걸을 수 있으며,여러 미약한 신체는 그 환경에 노출됨에 따라 신체의 일부는 잘라야 하는 운명의 기로에 서 있을 수 있다.특히,지구가 위치한 곳은 다름 아닌 옛 에덴동산으로 불렸던 시온 땅이기 때문이다.그곳은 현재 거대한 방하세계이다.그곳의 물질은 현대 인류가 강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지금은 우주 환경의 변화도 감지 못하는 수준이며 보도도 못하는 지적 수준을 보이고 있다.그 이유로 일부는 특수한 성향에 따라 신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그것은 역시 이 세계와 절대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세력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문제는 갈라섰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그들의 수는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왜냐하면 그들의 목적은 인류를 발아래 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오래된 병폐 행위중 하나는 역시 식인이다.그들의 위치에서는 인류는 유희를 즐기는 전설의 식인세력의 다음세대를 잇는 교육용으로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미끼를 물었다.그대로 그 풍토가 마련됐다.그들의 이면을 여실 없이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다.그들은 역사를 날조했으며 모든 것을 그들이 입맛대로 수정해 갔다.사냥한 손들의 세계로 치장했으며,장식으로 그들의 사냥을 본격화 하고 있었다. 지구의 지형과 유산들은 그들을 경계하라는 일종의 경고였다.일본의 문화유산의 하나인 전방후원분은 시간의 늪과 갈라파고스 식인 함정을 자손들에게 알리고 표현했기 때문이다.경고였다.그 사실들을 인류에 고하는 것이다.문제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는데 있다.무엇보다 인류로서는 꼭 거쳐야 한다.왜냐하면 경우의 수가 우주에 이르기 때문이다.모두 그 라인에서 벌어진 일들이다.여기는 분명히 한계가 있음을 인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만,최전방 전진부대로서 여러 압력을 행사할 것은 분명하다.그 하나가 미각으로 누른다는 계획이기 때문이다.특히 해괴하고 기상천외한 풍토가 보이는 것 또한 그 하나로 인지해야 한다.그 인류권이 한 번도 넘지 못한 동일선상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경험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범이 부탁한 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그것은 신체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환경과 주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그 초월의 힘이 아니면 결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인류는 그러한 사실들은 인지해야 하며,지원해야 한다.앞으로 마주할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게시일 : 2025-09-27, 글쓴이 : 김홍범 기자